18일 비 오는 서울 명동성당 앞. 한 남자가 목 놓아 ‘아버지’를 외치고 있었다. 이날은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 일정으로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날이었다.
그의 손에는 ‘My Father Shall Be Free to Receive Holy Communion(나의 아버지에게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적힌 종이와 함께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딸을 안고 있는 흑백사진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에게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을 외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황인철 ‘1969년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 대표다. 또한 황 대표는 아버지는 지난 1969년 12월 11일 대한한공 YS-11기를 탑승했다가 북한 고정간첩에 의해 납북된 황원(납북 당시 32세) 씨다.
낡은 흑백사진 속의 어린 아들은 어느새 딸 셋의 아버지가 되어 부인과 함께 빗속에서 “북한 땅에도 신앙의 자유가 인정돼 납북된 아버지가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북한 당국은 납치자들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납북된 황 씨는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 요셉(Joseph). 1969년 12월 11일 납북 당시 MBC PD로 재직 중 출장차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50명의 탑승자들과 함께 납북됐다. 이후 1970년 2월 14일 북한은 승객 39명을 돌려보냈으나, 황 씨를 비롯한 11명은 현재까지도 북한에 억류 중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012년 5월 9일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 실무반(WGEID)’에 1969년 KAL기 납치사건은 “강제실종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북한에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 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억류돼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강변했다.
황 대표는 북한의 이런 태도에 개의치 않았고,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만 보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청와대, 통일부 항의 방문을 비롯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100만 명 서명 운동을 진행 중에 있으며 영국 의회 청문회의 증언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교황의 미사에 초대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결과였다. 황 대표는 아버지가 세례까지 받은 신자임을 착안, 교황 알현을 위해 지난 몇 년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이번 교황의 방한을 맞아 진행된 미사에 황 대표를 포함한 일가족 5명 모두 초대를 받게 됐다.
교황은 이날 진행된 미사 강론을 통해 “죄 지은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며 남북한이 반목을 중단하고 대화를 통해 평화와 화해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황 대표가 지난 44년간 아버지를 억류하며 생사확인 조차 해주지 않는 북한 당국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남북화해의 걸림돌’로 치부해온 일각의 사람들에 대해 용서할 수 있을까?
황 대표는 “우리는 피해자 가족이지만 교황님의 말씀처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어 그는 “용서할 준비가 되었으니 북한이 아버지에 대한 생사확인 및 제3국을 통한 상봉 등을 추진하면서 먼저 다가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황님이 강론 중에 ‘정당한 행위를 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행하라’는 말씀을 듣고 있는데 가슴에 와 닿았다”며 “교황님과의 만남을 통해 아버지를 찾는 여정에 힘을 얻고 더불어 마음의 위안까지 얻었다”고 답했다.
황 대표의 첫째 딸인 황유진(부천 일신중 3학년) 양도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며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지난 44년간 간절히 원하시는데도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얼마나 더 간절해져야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교황 미사를 통해 지친 아버지가 마음의 평안을 잠시라도 얻었으면 좋겠다”며 “교황님의 평화통일 기도에 감사드리며 미사에 초청받게 되어 기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