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1일 당보(노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청년전위) 등 주요 3대신문의 명의로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북한은 김일성 생존 시에는 육성으로 매해 신년사(新年辭)를 발표해왔으며, 김일성 사후 공동사설이 신년사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그 정치적 비중은 많이 줄었다.
올해(2006년) 신년공동사설은 전반적으로 전년과 다를 바 없다. 제목은 “원대한 포부와 신심에 넘쳐 더 높이 비약하자”로 상당히 밋밋하며 추상적이다. 분량은 1만 자 남짓으로, 예년과 비슷한 분량이다. 내용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없이 두루뭉실한 수사(修辭)로만 나열하고 있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선군, 강성대국 건설,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 등이 강조되었다. 이어 경제분야는 지난해에 이어 농업부문이 주공전선으로 채택되었고, 사회주의 문화에 대한 강조, 민족대단합 등 대남관계 순으로 기술되었다.
올 신년사는 과거에 비해 더욱 수세적, 방어적 논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군, 강성대국, 우리식 사회주의, 혁명의 수뇌부 옹위 등 늘 해왔던 소리를 되풀이 하면서도 상당히 맥이 빠진 분위기이며, 전체적으로 선군(先軍)에 기초한 김정일 정권 사수에 역점이 두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핵문제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졌으며, 대미관계에서도 원론적인 비난만 짧게 언급되었고, 대일 비난은 생략됐다. 대일관계 등 올해 북한의 외교 활성화를 짐작케 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또 대남부문에서 구체적인 언급이 눈에 띈다. 6.15선언과 민족대단합을 계속 강조하면서 올 지방선거와 내년도 대통령 선거를 의식, 친북단체의 역할로서 남조선에서 ‘반보수 대연합’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됐다. 특히 남한의 뉴라이트 운동을 ‘신보수’로 표현하면서 강력하게 비난했다.
올 신년사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특징 1 |
|
계속 강조되는 선군(先軍) |
북한은 1999년 이후 ‘군을 앞세운다’는 뜻의 ‘선군’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어, 모든 용어에 선군을 조합하고 있다. 예컨대 선군노선, 선군영도, 선군기풍, 선군위업, 선군혁명의 식이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선군이라는 표현이 42번 등장했다. 2005년에는 41번, 2004년에는 43번 사용된 바 있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신년사는 ‘선군의 나열장’이다. 1999년 2회, 2000년 2회, 2001년 13회, 2002년 9회, 2003년 24회 등장한 후 2004년부터 급격히 ‘선군’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북한 정권이 무력으로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것을 주민통제와 대남전략의 주요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커다란 병영국가(兵營國家)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번 공동사설에도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 제시는 없이 정치군사적 과제를 압도적으로 많이 제시하고 있다.
특징 2 |
|
전반적인 ‘방어적’ 분위기 |
지난 몇 년간 북한 신년공동사설의 주된 톤은 공격적인 성향이 약화되고 방어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역시 “우리는 미제의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을 초강경으로 단호히 짓부시고 우리의 사상과 제도, 우리의 위업을 굳건히 지켜냈다”고 지난해를 평가하면서 ▲사회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혁명의 3세, 4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일심단결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결사수호한《고난의 행군》정신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며 백절불굴의 투지로 만난을 맞받아 뚫고나가야 한다 ▲적들의 비렬한 사상문화적 침투와 심리모략전을 혁명적인 사상공세로 단호히 짓부시며 사회주의제도를 좀먹는 온갖 이색적인 요소들이 추호도 침습할 수 없게 하여야 한다고 체제결속을 촉구하는 내용이 여러 군데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였음에도 특별히 이에 대한 공세적 표현이 없으며, 미국에 대한 표현도 연말에 조성된 위폐(僞幣)문제 등 북한의 국제범죄행위에 대한 미국의 제재 움직임에 비하면 그리 과격하지 않다. 특별히 직접 나서 미국과의 대치국면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반면 남한에서 반미전선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특징 3 |
|
대남(對南) 부문의 확대, 구체화 |
올해 신년공동사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남 부문의 내용이 확대되고, 구체적으로 적시된 것이다.
과거에도 신년공동사설의 막바지에는 대남 부문의 내용이 있었지만 올해에는 A4용지 2페이지 분량으로 예년에 비해 두 배 정도 양적으로 늘었다. 또한 내용도 추상적으로 온 겨레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서야 한다”(2005년 신년공동사설 中)는 식으로 하지 않고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 6월 15일을《우리 민족끼리의 날》로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을 전통화해야 한다. ▲거족적인 미군철수투쟁으로 이 땅에서 전쟁의 화근을 송두리채 들어내야 한다 ▲남조선에서 반보수대련합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구체적인 투쟁의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북한 내부 사업방향에 대한 지시가 추상적인데 비해 대남투쟁 부문이 오히려 구체적인 것은 북한 당국이 대남부분에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반전운동과 반보수대연합 형성을 촉구한 부분.
공동사설은 우선 “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머리우에 전쟁의 검은 구름이 무겁게 드리우고 있다”면서 마치 내일이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듯 위기의식을 한껏 고조시키면서 “평화는 투쟁으로 쟁취하여야 한다”고 반전운동을 지시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그래왔던 바, 올해에도 남한의 친북단체를 동원해 북한인권문제 제기 등을 전쟁음모로 몰아붙이며 남한 집권세력을 휘어잡고 대남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남한에서 ‘반보수대연합’을 촉구한 것은 최근 몇 년간 볼 수가 없었던 구체적인 활동지시이다. 해당 부분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친미보수세력은 지금 6.15통일시대를 과거의 대결시대로 되돌려세우고 저들의 집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최후발악을 하고 있다. 겨레의 지향과 민족의 운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당파적 리익추구에만 미쳐 날뛰는 반역의 무리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조선에서《유신》독재시기와 같은 중세기적인 암흑시대가 재현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조국통일운동의 전진을 기대할 수 없다. 독초는 제때에 뿌리뽑아 제거해버려야 한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신보수》의 결탁과 도전을 진보의 대련합으로 짓부셔버리고 매국반역집단에 종국적 파멸을 안겨야 한다.”
내정간섭으로 보일 수 있을만한 이러한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이 대남부문에 자신감과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며, 북한이 ‘신보수’라고 표현한 ‘뉴라이트’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확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북한 신년공동사설 제목>
2005년 |
전당, 전군, 전민이 일심단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치자. |
2004년 |
당의 령도밑에 강성대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 공세를 벌려 올해를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 |
2003년 |
위대한 선군기치 따라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을 높이 떨치자. |
2002년 |
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돐을 맞는 올해를 강성대국건설의 새로운 비약의 해로 빛내이자. |
2001년 |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 세기의 진격로를 열어 나가자. |
2000년 |
당창건 55돌을 맞는 올해를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속에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 |
데일리NK분석팀 dailynk@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