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년사설이 보여준 김정은 체제의 한계

1일 북한의 노동신문(당), 조선인민군(군), 청년전위(청년) 3개 기관지가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은 김정은의 싹수(사람이 잘될 징조) 없음을 보여줬다. 또한 2012년 평양 수뇌부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한계와 도덕적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사설의 제목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로 시작한다. 혈통에 기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대 북한의 전통처럼 됐지만 신년 공동사설 제목부터 죽은 아버지의 이름과 유훈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김일성 사망 때도 없던 일이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는데 필요한 명분으로 죽은 지도자의 유언 하나면 충분하다는 그들의 대담한 논리는 북한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낯설다. 한편으로 김정일 사망이 북한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당혹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유훈이 관통하고 있는 공동사설 1만 3천여 자(字) 중에 ‘개혁’이나 ‘개방’ 같은 문구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공동사설은 죽은 김정일의 업적 선전으로 가득 채워졌다. 김정일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나마 중간은 하던 북한을 아프리카 빈국들을 찾아가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다. 멀쩡하던 나라를 기아가 만연한 나라로 만든 김정일의 37년 통치기간을 “반만년 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민족번영의 대전성기”라고 칭송했다. 


또한 김정일 사망을 “5천년 민족사에서 최대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김일성 사망보다 더 큰 손실이자 큰 슬픔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김정일에 대한 언급은 총 57회로,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 발표됐던 1995년 신년공동사설에서 김일성이 총 15회 언급됐던 것과도 대비된다.  


이렇게 김일성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김정일을 우상화 하는 것은 결국 김정은 후계작업의 필요성을 그만큼 강하게 설득해야하는 절박성 때문이다. 공동사설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곧 위대한 김정일 동지”로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머무르고 있는 김정은의 처지를 고려한 듯, 군(軍)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고 독려하고, 당(黨)에는 “김정은 동지의 의도를 가장 신속하게, 가장 철저하게 관철해 나가는 인민군대 지휘관들의 전투적 기질을 적극 따라배우는 것”을 주문했다. 수령과 당, 군의 서열도 사실상 뒤죽박죽이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가장 이율배반적인 문구는 경제분야, 인민경제분야에서 확인된다. 김정일의 영도와 헌신에 의해 2011년이 강성국가 건설에 대혁신, 대비약이 일어난 “승리의 해”라고 자찬하면서도 인민들의 식량문제는 간부들이 책임지라고 떠 넘겼다.


공동사설은 “오늘 당 조직들의 전투력과 일군들의 혁명성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검증”된다고 압박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이미 수 년부터 김정일이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강성대국 진입’ 약속을 ‘강성국가’ ‘강성부흥’이라는 문구로 하향조정하는 꼼수까지 보였다.


우리 사회는 김정은 시대 처음으로 발표된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앞으로 북한이 표방하게 될 유훈통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향후 김정은 정권을 개방으로 유도하는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 따라 대북전략도 재점검해야 한다.


국민 여론은 류우익 통일장관을 비롯한 정부 대북라인의 대북 독해능력에 의문을 갖고 있다. 일단은 우리가 김정은에게 호의를 베풀면 김정은이 남북관계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주관적 희망부터 시급히 정리해야 한다. 


공동사설은 김정일 영결식에 공식조문단을 파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를 ‘역적패당’ ‘심판대상’으로 비난했다. 4년만에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온 것도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예속정권이라는 국내 종북주의자들의 억지 논리에 힘을 실어주려는 술책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북한인민들의 기아와 빈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의 국부(國富)를 핵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일족(一族)의 호화생활을 위해 탕진해왔다. 대한민국이 10여년 넘게 보여준 선의의 개방 유도 정책을 뿌리치고 번번히 핵실험과 군사도발을 앞세운 긴장조성으로 내부결속을 도모해왔다.


북한이 공동사설을 통해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공언한 이상 당분간 한반도 정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착각’으로 귀결될 것이다. 오히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이 낳게 될 후과를 대비하고 다양한 북한 변화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이 증오심으로 복수를 다짐하며 탱크부대를 방문한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일중과의 공조를 통한 안보태세 확립에도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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