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북한연구자들은 북한에서 발표하는 새해 공동사설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통일부 등 관련부처와 연구소,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수령’ 김정일의 1년 국정운영 방향이 직간접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새해 공동사설은 김정일의 지도에 의해 작성된 조선노동당의 1년 방침이며, 전체 당원과 인민들에게 제시된 투쟁지침이다. 김정일은 1995년 이후 새해 공동사설의 작성을 직접 지도해왔다. 김정일은 해당 부문 일군들이 작성한 초안을 읽고 몇 차례의 수정을 요구한 후 최종 완성본을 발표하도록 지시한다. 2000년 새해 공동사설은 김정일이 5번이나 읽고 수정을 지시했고, 친필로 제목까지 써주었다고 한다. 2003년 신년공동사설은 2번 읽었고, ‘전승(戰 勝) 50돐’을 중시한 초안의 내용을 ‘공화국 창건 55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2009년 새해 공동사설을 통해 제시하고 싶은 국정운영목표는 무엇일까?
이번 새해 공동사설에서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자는 목표가 제시됐다. 북한은 이미 수 년 전부터 김일성 탄생 100돐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건설의 원년’으로 제시한 바 있다.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경제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제 정상화에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정권은 올해부터 3년 동안 경제건설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마치도 전후 복구사업을 위해 ‘천리마 운동’을 일으켰던 1950~60년대처럼 말이다.
북한정권이 경제건설을 위해 제시한 전략은 노동력 투입의 확대와 자력갱생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전략이 아니다. 북한정권은 지금까지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만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경제강국을 건설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없었다.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전략은 외부자본과 선진과학기술을 도입할 내부 명분을 스스로 차단시켜 북한 경제의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식 사회주의’ 안에서 북한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노동력 투입의 확대’라는 자구책, 즉 ‘자력갱생’ 카드만 남는 것이다. 새해 공동사설에 등장한 ‘천리마 대고조’가 바로 그것이다.
경제정책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 등 선행부문에서 금속공업 정상화를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경제 정상화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인다. 1990년대부터 북한정권은 전기 문제를 선결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인식 하에 전력공업 정상화에 역점을 기울여 왔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6년 동안 인민군의 노동력을 중심으로 1천 여개의 중소형 발전소를 건설했다. 또한 1999년 1월 전당, 전군, 전민이 동원되여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에 힘을 다그칠 데 대한 국방위원회 명령을 채택한 후 태천수력발전소, 안변청년발전소 등 전력공업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3년부터 2005년에는 국가계획위원회에서 동력문제 해결을 위한 단기전망계획인 3개년 전망계획을 작성해서 수행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발전용량은 1992년 714만kW에서 782만kW로 증가했다. 그러나 발전량은 1992년 247억kWh에서 1998년 170억kWh로 감소했고, 2006년 225억kWh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북한정권이 전력공업 정상화에 13년간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생산량은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1992년의 생산량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1995년 이후 13년 동안 추진해온 전력문제 정상화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사정에 의해 2009년에는 선행부문 중에서 특히 금속문제의 정상화에 역점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 제시됐다.
북한정권은 이번 새해 공동사설에서 경제위기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은 너무나 형편없다. 이쯤 되면 새해 공동사설에 담겨있는 김정일의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될 정도다. 김정일은 정말 이러한 방법으로 북한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새해 공동사설에 나타난 김정일의 의도가 ‘경제의 실질적 회복과 정상화’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일 자신이 경제강국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대주민용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북한정권이 제시한 ‘혁명적 대고조’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불만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김정일의 관심은 여전히 미국의 위협과 내부 불안요소로부터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에 있다. 새해공동사설에서는 핵무기와 군대에 의존한 ‘수령결사옹위’ 의지를 선명하게 강조되고 있다.
2009년 북한정권은 경제강국을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사회주의적 동원과 집단주의 강화를 내세우면서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비사회주의적 요소에 대한 척결 투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내부 불안 요소는 올해도 그 파고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북한체제의 위기를 1년 더 지켜보게 됐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인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새해공동사설의 ‘문구’만 달달 외우고 있을 인민들의 고달픈 삶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