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년공동사설과 슬픈 ‘염화시중의 미소’

2011년 한반도 정세는 2010년의 연장선에서 예상해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특징은 안보 불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 농축 우라늄 핵 시설 공개, 연평도 포격 등 한국과 주변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또 북한은 당대표자회를 통해 후계자를 공식화하면서 권력의 안정적 세습을 위해 김정은의 군 통제 능력을 높여주고, 당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김정일이 5월과 8월 경제,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중국을 잇따라 방문했다. 이상이 김정일 입장에서 본 지난해의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지난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에서 위의 주요 사건들을 예측해볼 수 있는 실마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대남관계가 나쁘다 해도 북한정권이 신년공동사설에서 “올해 남조선을 군사공격하겠다”고 언급할 바보들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신년공동사설에서 무언가 북한의 변화동향을 감지하는 실마리들이 좀 있었던 편이었다.


그런데, 매년 크게 기대를 한 적도 없긴 하지만,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그해의 북한 동향을 전망하고 관측하는 것이 헛수고가 된 지 꽤 되었다. 신년공동사설의 첫번째 목적은 김정일 정권이 북한 주민들에 대해 자신의 정권유지의 정당성을 ‘말'(言)로써 선전하는 것이다. 대를 이어 충성,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 위대한 조선노동당, 선군정치, 강성대국 등등을 강조하는 것도 정권유지를 위한 선전이다.


원래 ‘말’이란  그 말에 담긴 내용이 실천성을 가질 때 비로소 말로써 ‘의미’를 갖는다. 실천성이 없는 말은 그냥 말을 위한 말, 허망한 공기의 진동일 따름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쉽게 말해 ‘사기꾼’이 된다. 물론 옛날부터 공산주의 정치선전(propaganda)이란 그저 ‘선전’에 충실한, 말을 위한 말에 불과한 측면이 많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소한의 실천성 정도는 담보하고 있었다. 예컨대 “올해 양말을 10켤레 배급해주겠다”고 말하면, 적어도 1켤레 정도는 배급이 나온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넘어가긴 어려웠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을 참고하면 적어도 1990년대부터는 당국의 말이 제대로 이행되는 게 별로 없었다.  


북한정권이 새해에 주민들에게 하는 ‘첫 말’은 신년공동사설이다. 북한당국도 신년공동사설 만큼은 그나마 좀 신경을 써왔던 편이다. 하지만 필자의 기억에 신년공동사설도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대략 2000년대 초부터는 ‘약속을 담보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대기 중에 날려 보내는 발성(發聲)’ 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올해는 공동사설 제목부터 지난해 것을 재탕하고 있다(제목 재탕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경공업·농업 발전과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2010년)’과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의 결정적 전환(2011년)’에서 도대체 무슨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필자는 북한정권이 이제 당국이 하는 말을 믿는 주민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사 지난해와 같은 제목, 같은 내용으로 내보내도 주민들이 그냥 ‘일상적인 일’로 알고 넘어갈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주민도 믿지 않고, 물론 당국도 믿지 않는 신년공동사설이 되었고, 이같은 인식이 주민과 당국 사이에 공유(?)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정일조차도 이제는 신년공동사설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제목이 지난해 재탕이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선전 당국이 신년공동사설을 내놓고도 스스로 거짓말임을 다 아니까 뒤로 돌아서서 ‘씨익~’하고 웃으면, 김정일도 주민도 다같이 ‘씨익~’ 웃고 넘어가는, 그야말로 서로간에 슬픈 ‘염화미소(拈花微笑)’처럼 된 것이다.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이 나오면 우리 언론에는 ‘신년공동사설을 통해본 올해의 북한 전망’ 식의 분석 기사들이 나온다.  민간과 정부 연구소들에서도 분석이 나온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신년공동사설은 북한의 그해 정책 기조를 국내외에 천명하는 공식 신년사로서…” 어쩌고 하는 설명이 나오고 분석이 잇따른다.


물론 언론과 연구소에서는 당연히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년공동사설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들이나 분석하는 것은 매우 초보적인 일이다. 신년공동사설은 이제 북한정권에게나, 주민들에게나 별 의미가 없어졌다. 실천성이 없는 글자들의 나열, 그뿐이다. 신년공동사설은 그냥 사설일뿐이고, 실천은 별개인 것이다.


이제는 신년공동사설을 읽어내는 관점도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올해 신년공동사설도 몇 가지 강조한 내용은 있다. 1)경공업 주공전선과 인민생활 향상 2)당의 영도적 역할과 사로청 역할 강조, 즉 김정은 후계체제 이행 중요성 간접 부각 3)국방공업의 최첨단 돌파전과 경제 전반의 기관차 역할, 즉 군수공업의 변함없는 중요성 4) 중국과의 협력 강조 5) 대남관계 대화와 협력 강조  등이다.


이런 대목을 보면서 김정일이 자신의 측근에 있는 정권 협력자들에게 일을 떼어주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예를 들면, 경공업 대목은 김경희와 그녀 측근인 박봉주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고, 당의 영도적 역할과 청년조직 대목은 최룡해에게 ‘김정은을 잘 보좌해라’는 메시지이며, 국방공업은 여전히 전병호와 주규창에게 신임을 주고, 중국과의 협력은 장성택, 대남관계는 김양건에게 변함없는 신임을 주는 메시지 같다는 인상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올해 신년공동사설 원고를 검토하면서 주변 측근들에게 중요한 일을 떼주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당과 국가가 올해 이런 일을 할 것이며, 우리는 주민들에게 이같은 약속을 지킬 것이다”라는 데 김정일의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같은 느낌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주관적 인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사설의 내용이 이렇게도 맹탕인 근본 이유는 북한정권의 대내외 전략이 2010년과 2011년이 다를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한반도 정세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2010년의 충격적 사건들이 올해 플러스 알파가 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언론들은 ‘대남관계에서 대화와 협력’ 대목에 구미가 좀 당기는 모양이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희망사항이 좀 섞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김정일은 햇볕정책처럼 자신의 정권에 이익을 주면 받아먹고 이익을 주지 않으면 두들겨 패는 명쾌한 대남전술을 올해도 계속 구사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조선이 평화를 유지하려면 돈이 좀 든다”는 사실을 알리고, 미국과 중국에게는 큰 틀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지난해 천안함, 연평도 사건보다 한발짝 더 나가는 방식으로 ‘피부에 와닿게’ 보여주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방법 외에 김정일이 다른 체제생존 프레임(frame)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독재통치자금을 마련하는 문제인데, 그 방법으로 이른바 ‘중국과의 경협 방식’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남북경협) 명목으로 김정일에게 ‘우아하게’ 통치자금을 조달해 주었듯이, 중국이 유엔의 대북제재(1718, 1874)를 피하면서 ‘투자’ 명목하에 북중 경협방식으로 ‘우아하게’ 김정일의 독재통치자금을 조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풍투자그룹이니 하는 단체들이 김정일 통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김정일에게 현금을 갖다 바치면서도 남북관계를 우리의 페이스대로 끌고 오지 못했다면, 중국정부는 자신의 멍석 안으로 김정일 정권을 끌어당기려 할 것은 분명할 것이다. 중국은 결코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지금 중국에게 절실한 문제는 드러나지 않게 ‘항미(抗美=미국에 대항)전략’을 수행하는 것인데, 그 일환 중 하나가 북한 지역(특히 나진항)을 빌려 동해로 진출하여 후일 미국 러시아 일본과의 본격적인 경쟁을 대비하는 것이다. 나진항은 수심이 얕아 대규모 수출입항으로는 부적합하고 어선이나 소형 잠수함 등을 이용하여 동해에 대한 정보활동을 전개하면서 군항 역할로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전 청와대 경제수석 견해).


지금 중국의 대외전략 상황을 보면 대륙의 동쪽이 많이 취약하고 특히 동해에서 중국은 옴치고 뛸 조금의 여유 공간조차 없는 형편이다. 동해 해저를 돌아다니는 잠수함 숫자는 아마도 미국 러시아 일본 북한 한국의 순일 것이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경우 러시아는 나진항을 통한 중국의 동해 진출을 마땅치 않게 생각할 것이고, 이 대목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 사이에 새 협상 가능성이 열린다. 김정일은 나진항 임대를 매개로 하여 중국의 ‘투자’를 받아내는 한편 “잘 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을 이용하여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해묵은 김정일의 ‘주체 외교’라는 것인데, 실상은 “조국의 산하를 팔아서 세습독재 통치자금을 확보”하려는 짓이다. 


그런데 만약 북중간 경협이 그런 식으로 활성화되고 6자회담이 열려도 북한 핵문제는 공전하면서 오히려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할 경우 한국정부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또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가 한미의 반대로 안 풀릴 경우, 김정일이 서해 5도 포격 또는 일부 도서 기습점령을 한 뒤 ‘서해 5도 평화협상’부터 하자고 나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올해 ‘북정권 도발 억지 및 북주민 자체 세력 강화’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을 자신을 위한 총폭탄으로 계속 사용하기 위해 한반도에 군사긴장을 일으켜야 한다. 반면 우리는 김정일의 군사모험주의를 제어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을 정권과 분리시켜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과 북한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먼저 북한정권이 일체 도발을 못하도록 한미연합의 군사적 억지를 확실히 전개하면서, 한편으로 북한 주민들을 김정일의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는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통일부-국정원과 국방부의 역할을 투 트랙(two track)으로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말로 유능한 전략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리한 시간도 별로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올해 신년공동사설 내용은 빨리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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