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 해결하려면 先軍 포기하라”

▲ 정광민 박사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없으면, 올해 8월 350만이 굶게 된다” (6월 4일자 중앙일보 톱기사).

“현재 북한의 식량상황을 고려해볼 때 300만에 가까운 아사자가 발생한 1995~1998년의 대기근을 웃도는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세계식량계획(WFP)의 평양 사무소장 리처드 레이건.

또한 한국의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대북 식량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나 우리 정치권의 양심을 의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기근을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위 기사의 내용은 문제투성이다. 지면 관계상 몇 가지 의문점과 오해들을 두 가지로 압축시켜 살펴보자.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WFP의 레이건 소장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의 역사상 최대의 기근이 2번씩 반복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레이건 소장은 현재 김정일 정권이 ‘식량 증산 총동원령’을 선포할 만큼 식량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는 터무니 없는 오해다.

현재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식량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레이건 소장은 “국제사회가 올해부터 제대로 식량지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어설픈 설명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왜 북한주민들은 식량을 구입할 수입원이 없는가?’라는 문제와 ‘실제로 김정일 정권의 재원이 고갈되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줄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돼야 한다.

선군과 국제지원은 김정일의 ‘세트메뉴’

그 동안 국제사회는 대북 지원식량의 분배 투명성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0년이나 ‘긴급인도지원’을 계속해 왔다. 이제 와서 국제사회를 ‘냉혈한’으로 취급하는 것은 북한의 식량기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90년대 후반의 대기근은 국제사회의 원조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상황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은 90년대 중반부터 ‘선군정치’를 내세워 왔다. 국가재정은 핵개발을 비롯한 군사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면서 일반주민들의 식량부족은 ‘국제사회의 원조’로 해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선군정치’ 노선은 애당초 국제사회의 인도적 원조를 기반으로 추진되었던 ‘세트메뉴’였던 것이다.

레이건 소장은 “올해 말까지 매월 4만 톤의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월 316만 달러가 필요하다. 이 정도의 외화라면 김정일 정권도 충분히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실례로 북한은 2000~2004년까지 무기 수출만으로 1억 달러에 가까운 외화수입을 챙겼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의 외화 부족 때문에 북한의 기근이 재현된다는 주장은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

레이건 소장은 각국 정부들이 북한에 대한 원조금 공여액을 줄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정일 정권이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기 대문이다.

▲ 남한이 WFP 통해 지원한 쌀이 북한에 하역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민주국가의 정부가 해외에 원조를 보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제한이 있다. 해외 원조에 대한 재정 규모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며, 이는 자국의 국민여론에 의해 지출 대상과 규모가 결정된다. 비록 인도적 원조라 하더라도 그 용도와 유용성에 대해서 국민적 합의가 주어져야 가능하다.

지구상 수많은 나라에 인도적 원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하필이면 핵무기를 보유한 독재국가에 대해 용도불명의 원조를 10년 이상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몇이나 될까?

실제, 중국정부조차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식량지원 중단(북한 부족 식량의 30~40%에 상당)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부족한 것은 식량수입에 필요한 ‘외화’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해 인도적 원조를 요청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외교적 노력’(핵폐기와 6자회담 복귀)이다.

선군노선 폐기없이 북한 개혁 불가능

이러한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소장은 다음과 같이 김정일 정권의 노력을 칭찬한다.

“군수공업 국가인 북한이 식량증산으로 방향 전환한 사실이 중요하다. 북한 정권이 인민 생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6월 10일 <조선중앙방송>은 “선군의 원칙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은 여전히 세계 빈곤국 중 최대의 군사국가다. 원래 ‘식량증산 총동원령’은 ‘선군정치’와 모순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북한에서 훌륭하게 양립하고 있다.

분명 김정일 정권은 ‘농업중시 정책’을 ‘올해의 주공격전선’ 이라고 선포했다. 이에 따라 올 봄에는 군인은 물론 노동당의 중견 간부나 비밀경찰의 요원까지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북한에서 대규모 농촌지원 노력동원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무너진 공업분야의 방대한 노동력을 농기계나 가축 대신 집단농장에 몰아내는 수법은 그전부터 존재해왔다.

농촌 지원에 대한 ‘장군님의 교시’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회개하여 ‘인민 생활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신호’로 이해하는 것은 중대한 착각이다. 증산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총동원령을 근거로 하는 주관적인 해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보다 정치 선전의 배경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해 김정일의 속내를 간파하는 것이 절실하다.

‘제2의 고난의 행군’ 국제사회 압박 대비령

김정일 정권은 지난 5월 중순, 모든 북한주민들에게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할 것을 지시했다(6월 6 일자 노동신문). 북한당국은 90년대 후반의 대기근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당시, 김정일은 “사탕보다 중요한 것은 총알”이라고 말했다. 북한주민들의 생존보다 군수산업을 최우선 하는 정권이기 때문에 더욱 더 ‘고난의 행군’을 강조했던 것이다.

때문에 또 다시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는 매우 불길하다. 이유야 어쨌든 머지 않아 확실시 되는 위기에 대비해 식량자급을 준비하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의 식량원조 중단을 포함해 ‘핵무기 카드’에 대한 국제적 압력(경제제재나 인도적 식량지원 축소)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식량(=자금)의 보급선이 끊어진 전시하의 ‘식량 증산 총동원령’을 방불케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제2차 대기근이 발생할 것인가? 제2차 대기근이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누가 희생될 것인가? 과연 대기근의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제1차 대기근에 대한 복기(復碁)가 필요하다.

제1차 대기근은 전형적인 ‘도시형’이었다. 함경북도의 청진이나 강원도의 원산 같은 도시에서는 일반주민뿐만 아니라 많은 당원들까지 굶어 죽었다. 당시 도시지역의 주민들의 철저히 국가의 배급에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식량 배급이 중단되자 당원들 조차 불가항력이었다(1994~1995년).

1991년부터 구소련의 붕괴로 인해 영농물자(농업기계나 화학 비료•농약)와 식량(밀가루)의 수입이 두절되었다. 북한 당국은 식량 위기 발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베트남식의 개혁 개방 등)을 취하지 않았다.

90년대 대량아사, 김정일식 인재(人災)

그 당시 북한당국의 새로운 정책이라고 해봐야 ‘선군정치’ 선포와 국제사회에 대한 ‘원조 요청’뿐이었다(1995년). 북한당국의 ‘원조요청’에 따른 국제사회의 긴급원조는 결국 선군정치를 뒷받침한 결과로 변질되고 만다. 원조 물자는 군부와 독재기관에 횡령되어 일반주민들의 손에 닿지 못했다.

이것이 대기근을 일으킨 첫 번째 실정(失政)이다. 국제사회의 긴급원조를 받지 못했던 지방도시 주민들이 대량으로 굶어 죽었다. 두 번째 실정은 스스로 식량을 마련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소규모 장사)들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에 있다.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마저 박탈당한 도시지역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갔다. 국제사회의 원조식량도 배급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생존자유마저 빼앗았던 ‘이중 실정’이 일으킨 ‘인재(人災)’였다.

천재지변은 예견할 수 없지만, 인재는 예측 가능하고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만약 제2차 대기근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 원인은 마찬가지로 김정일 정권의 실정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선군혁명, 물가폭등, 그리고 중세시대를 방불케 하는 폭압정치다.

제2차 대기근, 서민층부터 희생될 것

필자의 예측으로는 제2차 대기근이 발생한다면 역시나 ‘농촌형’이 아니라 ‘도시형’일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제1차 대기근에 필적할 만한 숫자의 희생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희생자의 출신지역과 사회계층일 것이다. 제1차 대기근 당시에는 특정 지역의 공장•기업소 노동자와 잡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기아에 몰렸다. 아마도 제2차 대기근이 발생한다면 전국적 범위에서 소득 계층의 하위 10%정도(약 2~3%는 꽃제비를 비롯한 부랑자)가 아사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제1차 대기근 이후, 농민을 제외한 북한주민의 ‘식량 획득 방법’은 크게 3종류로 살펴볼 수 있다.
① 특권층에만 한정되는 배급 식량
② 공장•기업소의 임금과 현물지급(공장 부속의 전답과 채소밭에서 생산되는 식량)
③ 시장에서의 부업적 생계유지 활동(=소규모 장사)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분야는 ③번이다.

‘선군정치’로부터 ‘선군혁명’으로 진행되는 10년동안 발전소 등의 기간산업 분야나 민간공업 부문은 거의 멈추어 섰다. 비교적 대우받고 있는 군수분야 산업조차 가동률이 20%에 멈추고 있는 가운데, 일반의 공장•기업소는 거의 가동 중단 상태다.

이렇게 되면 일반 종업원은 배급제 폐지의 대가가 되어야 할 임금도 받을 수 없다. 공장의 공터에서 만드는 곡물이나 야채의 현물지급도 미약한 수준이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은 시장 관련의 일(판매나 물품 운반)을 얻게 될 수밖에 없다.

원조물자, 북한 지배층이 횡령

2002년의 김정일식 경제개혁(7.1 경제 조치)의 실시 이후, 암시장이 공인되어 시장과 장마당에서의 소규모 장사에 의한 ‘식량획득 능력’이 늘어났다. 이것이 어쨌든 제1차 대기근이 끝난 주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북한에서는 아직 ‘시장에 관한 자유’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동과 여행에 대한 규제가 많고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없다.

둘째, 북한의 산업이 마비됨에 따라 상품의 공급력이 제한되어 터무니없는 통화 증발에 따른 엄청난 물가폭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자본이 없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원조물자’는 북한의 지배층(=고소득 계층)부터 횡령한다. 물가폭등은 제대로 월급을 받고 있는 검찰•재판소원이나 보위부 요원들의 부정부패를 촉발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물가폭등으로 인한 월급의 감소분을 되찾기 위해서 일반 주민들의 상행위에 트집을 붙여 뇌물이나 벌금 등을 착복한다. 이들보다 한 단계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의 최상위 계층은 모든 명목으로 세금을 징수해 국고를 사유화한다. 이것이 시장의 발전을 저해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경제의 저성장(혹은 마이너스 성장) 아래,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사회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최하층은 기아의 위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제2차 대기근이 발생한다면 이와 같은 구조적 모순 때문이며, 북한 전 국토에 희생자를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제1차 대기근을 웃도는 사회적 혼란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정치적 변동을 예고할지는 미지수다.

총알보다 사탕 중시해야 해결

이러한 정치적 결과를 예측하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은, 제2차 기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개혁이 필요하다. 당연히 김정일이 결심만 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첫째는 배급 제도의 개혁이다. 현재의 배급제는 특권층과 군부, 그리고 전략적 산업의 종사자에게만 식량을 보장하고 있다. 대기근이 재발할 때 최초의 희생자가 되는 실업 상태의 도시 빈민에 대한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조 물자의 투명한 분배와 함께 도시 빈민을 위한 공적 식량배급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둘째는 북한당국이 식량 무역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식량 수입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단행해야 한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총알보다 사탕을 중시하는 정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정권은 정권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죽은 아버지의 발언으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광민/ 경제학박사,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저자

-부산대 경제학과 졸
-일본 나고야대 경제학 박사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1979)
-80년 5.17 비상계엄법 위반 구속
-부산노동자료연구실 대표(88-92)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89-02)
-환경과 자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98-00)
-現 인권정책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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