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자들이 해외를 돌며 전면적인 쌀 지원 외교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북한 내부 시장에서 쌀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일반 주민들의 식량수급은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북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최근 영국을 방문해 고위관리들에게 “60년만의 한파와 지난해 수확량 부족으로 앞으로 두 달이 고비”라며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장이 말한 두 달은 북한에서 춘궁기라고 부르는 보릿고개를 의미한다. 가을에 수확한 쌀이 바닥을 드러내고 햇감자가 나오는 6월 전까지 식량 부족 현상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북한 주민들은 곡물을 대신해 채소나 산나물을 섭취하면서 버텨낸다.
그러나 북한 시장 쌀가격은 이런 최 의장의 식량 지원 읍소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최 의장이 영국까지 가서 식량지원을 요청하던 시점에도 북한 식량 가격은 하락세였다. 최 의장이 영국에 도착한 지난달 28일에는 쌀값이 1800원대 였다. 올해 초 일시적이나마 3000원(1월 24~30일)을 호가했던 상황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올해 초 ㎏당 3천원대까지 상승했던 쌀값은 지난달 2000원대에 진입했다. 이달 들어서는 1600원대까지 하락했다. 북한 빈곤층의 주식인 옥수수 가격은 700원대다.
북한 식량 가격 하락은 일단 환율 안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화폐 가치가 하락 일변도에서 2월 중순부터 소폭 하락하는 안정세를 보이면서 쌀값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환율은 중국 인민폐 기준으로 올해 1월 1위안당 520원까지 나가다가 현재는 400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한 장마당에서 옷가지를 팔고 있는 한 주민은 “쌀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내려가고 있어 이달 중순에는 1500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마당에는 쌀 공급이 충분해 돈만 있으면 언제든 쌀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장마당에서 식량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진 원인에는 충분한 쌀 공급량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민들의 구매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현지의 전언이다. 특히 극빈층일수록 현금이나 식량을 빌릴 때 높은 이자를 요구받기 때문에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당 쌀 가격 하락 현상에 대해 평양 출신 한 탈북자는 “북한 식량 사정이 예년과 비교해 크게 나빠지지 않은 반면, 화폐개혁 이후 주민들의 현금 보유량이 감소해 구매력이 예전만 못해 쌀 값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태진 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의 식량가격은 위안화, 달러화와 같은 외화와도 연계돼있다”면서 “북한 화폐와 외화의 환율이 안정되면 식량가격이 떨어지면서 안정된다고 볼 수 있다”며 환율 안정이 쌀 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권 부원장은 “단기적으로 밀수나 군부대 식량이 빼돌려져 장마당으로 몰린 것 일수 있다”면서 “전체적인 식량 사정이 좋지 않지만 장마당 내부에서는 일시적으로 식량 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