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외교 ‘정치행사’ 용도로만 볼 수 없다

북한의 식량문제는 오래된 문제이다. 금년 3월 WFP가 식량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긴급 대북식량지원을 호소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가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되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이런 현상도 국제사회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계하면서 늘 부딪혀온 오래된 문제였다.


이런 가운데 올해 북한 식량문제를 고려하는데 몇 가지 새로운 동향과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이 부분의 해석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그 중 하나가 식량의 시장가격이 하향 안정화하고 있는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당국이 국가총력적으로 대외적인 식량(지원)확보에 나선 것이다.


남한의 일부 논자(論者)들은 전자를 두고 식량이 부족하다면 시장가격은 급등하는 것이 관례인데 시장가격이 하향한다는 것은 시장을 통한 식량수급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북한의 식량사정이 긴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의 북한 시장가격의 해석에는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북한의 환율안정이 시장가격을 하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밀무역이나 식량 빼돌리기 등 비공식적인 식량공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이것이 시장가격의 하락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시장가격의 하락이 일반적으로는 시장에서의 식량획득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모든 계층에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K. Sen)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북동부의 월로(Wollo) 기근(1972-74년)은 “식량가격이 오르기도 했지만 내리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식량가격은 그다지 상승하지 않은 가운데서 기근이 발생”한 사례였다. 월로 기근의 피해자들은 소작농이나 소규모 자작농이었는데 이들은 식량생산의 붕괴 이후 감소한 식량생산을 시장에서 구입․보충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다시 북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북한 장마당에는 확실히 식량이 공급되고 있고 식량가격도 하향 안정화 돼 돈만 있으면 식량을 사먹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다. 북한의 하층 주민들은 화폐개혁으로 보유 화폐를 거의 날려버렸고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장사도 예전 같지 못하고 구매력이 떨어진 상태에 있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에서의 전통적인 빈곤계층(취약계층) 이외에 임금도 배급도 구매력도 없는 ‘신빈곤층’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 굶고 있는 층은 취약계층만이 아니다. 시장활동의 기반을 상실한 신(新)빈곤층, 하급군인, 그리고 일부 농민들마저 굶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북한 전체가 굶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1년 1월 19일자 조선신보(朝鮮新報)를 보면  패션, 외식, 핸드폰이 주민생활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향유하는 계층은 평양 혹은 일부 지방의 중산층일 터인데 이들이 한편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패션과 외식, 핸드폰을 향유하고, 일부에서는 ‘굶주림의 대열’이 이어지고 있는 이것이 오늘의 북한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이와 같은 ‘굶주림’에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두 번째 쟁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 대북매체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경 김정일은 해외공관을 통해 식량 80만 톤을 입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 2월 WFP를 불러들여 식량실태조사에 응한 것이나, 3월말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영국을 방문해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이나 혹은 해외공관들이 각국 정부에 식량지원을 타진하는 등의 움직임은 김정일의 지시와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왜 북한당국은 갑자기 대규모의 식량(지원) 확보에 나선 것일까? 북측 최태복 의장의 발언을 보면 “60년 만에 북한을 강타한 최악의 한파와 지난해 수확량 부족”에 원인이 있고 “앞으로 두 달이 고비”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지난해 식량작황은 예년보다 플러스 마이너스 몇 만톤 수준으로 특별히 작황이 나빠져 그것 때문에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데일리엔케이 4.19일자) 북한당국이 갑자기 대규모 식량지원 확보에 나선 것은 다른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혹은 대북매체 일각에서는 북한이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기를 맞아 대규모의 식량배급 이벤트를 벌이기 위해서 혹은 새로운 대남 도발을 위한 비상식량 비축용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필자는 앞서 북한주민의 굶주림은 실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입장에서 북의 식량확보 움직임을 다른 각도에서 볼 여지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 이후 식량부족분에 대해서는 ‘원조최대화’ 전략으로 대처해왔다. 이번에도 이런 대처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북한은 올해 초 2020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경제개발10개년계획’을 공표했다. 그리고 올해 경제시책은 경공업 부문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인민생활향상을 지상과제로 하면서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다.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경제개발을 하려면 우선 중국자본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고 그 다음에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은 노동력을 동원해서 수출가공품을 만들거나 광물자원을 팔아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대규모의 노동동원이 뒤따라야 하고 최소한 노동자들이 먹고 살 양식은 보장해야 한다. 지금의 외화 핍박 속에서 북한이 부족 식량을 외화로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연례적인 부족식량 이외에 추가적인 식량확보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아닐까?


북의 식량확보 노력은 2012년과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정치적인 것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인민생활향상이라는 프로그램이 동시병행하고 있는 현실도 제대로 평가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점에서 북의 식량확보 노력은 실재하는 굶주림에 대한 자구책이자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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