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난을 묻다] 최악의 식량난說, 진실은 어디에?

[데스크 칼럼] 식량난인데 쌀값 안정?...인민경제 현실 면밀한 검토 필요

모내기
북한 모내기.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의 식량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북한 식량 사정이 10년 이래 최악의 상황이라면서 국제사회의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가뭄 등 자연재해로 지난해 곡물수확량이 대폭 감소했고, 이에 북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1010만여 명에 대한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식량난을 경험해본 주민들이 이미 장사를 통해 생존방법을 터득했다는 점, ‘전민(全民)의 시장화’라는 표현도 나올 만큼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 등을 근거로 식량 사정이 다소 어렵긴 하겠지만, 과거와 같이 굶어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장엔 쌀이 있다”…기근 정황은 포착 안돼

본지가 내부 소식통을 통해 자체 조사한 결과, 현재 북한에서 기근 상태로 보일 만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있으며, 각 지역의 소식통들은 “시장에는 곡식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수중에 자금만 있다면 쌀과 옥수수, 밀가루 등을 구입해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먹는 양을 조금 줄이거나 다른 대체 곡물을 섭취하는 방향으로 현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부분 지역에서 알곡(곡물) 수확량이 줄어 주민들이 비교적 눅은(싼) 가격의 잡곡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양강도 일부 지역에서 쌀보다 kg당 1500원가량 저렴한 보리쌀의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바 있다. 아울러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업품 구매를 자제하고, 고기를 먹는 횟수를 줄이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자력갱생’과 대처 능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만 최근 북한 경기가 지속해서 나빠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시장에서 상인은 물론 구매자 수도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시장 인근의 식당과 시장의 ‘손발’ 역할을 하는 짐수레꾼들의 매출이 줄어드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생산자인 농민들이 굶주리면서 ‘절량세대(돈도 음식도 전혀 없는 가정)’가 속출하고 있다는 증언도 전해지고 있다.

최악의 식량난인데, 쌀값은 안정?

북한 내부에서 쌀 가격은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대체로 4000~5000대를 유지하며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공급과 소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북한 당국이 공식시장에 대해 통제와 단속에 나서면 마치 풍선효과처럼 쌀 가격이 요동쳤다. 쌀 가격이 수요와 공급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2005년 가을 북한 당국이 종합시장에서 쌀 거래를 금지시키자, 쌀 거래 가격은 엄청나게 폭등했다. 2005년 9월 북한돈으로 대략 900원(kg)이었던 쌀 가격이 2006년 4월에는 4500원(kg)까지 올랐다.

국제정세에 쌀 가격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북한이 2009년 2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쌀 가격이 상승했다. 북한의 쌀 도매상들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예상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시작되면 인도적 지원이 끊기게 되고, 외국으로부터 쌀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한 쌀 도매상들은 소매상들에게 쌀을 팔지 않았다.

북한 라선시 종합시장 수산물 매대 풍경. 2014년 촬영.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그러나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의 정책이나 외부 상황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게된 셈이다. 김일성 생일이나 모내기 전투 동원 등으로 시장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주민들은 개인에게서 쌀을 살 수 있게 됐다. 또 시장 밖 메뚜기 장사꾼들도 시장관리소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소위 ‘공급 안정화’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도 시장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할 만한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곡물은 제재 품목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 시장이 대처하기 용이하다. 공급이 안정돼있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외부에서 얼마든지 곡물을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 당국도 쌀값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다른 품목의 무역와크(무역허가증)를 보유한 무역회사에 일단 먼저 쌀이나 곡물을 들여오라고 지시하기도 하고, 일종의 ‘한도 가격’을 정해 일정 가격 이상으로 쌀을 팔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2호미(군량미) 창고를 풀어 쌀 공급을 단행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체제 안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 당국이 시장 가격 안정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처럼 북한 쌀값은 내부 시장의 안정화와 더불어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관리 등 복합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인민 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장 가격과 그에 따른 영향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 쌀값 등 시장 지표를 ‘객관적 지표로 보기 어렵다’고 단정 지을 게 아니라 인민 경제를 추동하고 있는 주요 요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식량난’의 실체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용 기자
sylee@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