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원자재 수출 봉쇄와 해외노동자 신규 송출 금지 등을 핵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영향으로 북한의 외화 수입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실제 북한 내부에서 외화 부족 현상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북한의 외화 수입원을 차단하는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데다 주민들의 외화 저축 심리까지 겹쳐 내부에서 유통되는 외화량이 줄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전히 큰 거래에서는 외화 결제가 행해지긴 하지만,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원화를 사용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30일 데일리NK에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당연히 우리(북한) 돈을 더 많이 사용한다”며 “중국의 위안화나 딸라(달러)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의 총량이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될 정도의 수량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식통은 “외화가 희소하고 수요도 높아지면서 일반 주민들 속에서 저축을 무조건 외화로 하기 때문에 거래되는 외화가 적을 수 있다”면서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위조화폐가 난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함경북도의 한 40대 상인 역시 “경제봉쇄(대북제재)가 지속되면서 외화 유통이 적어진 것만은 확실하다”며 “이 때문에 위(당국)에서 외화상점과 외화식당 등에서 외화를 쓰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돈 많이 버는 사람에게 충성자금을 강요하고 있지만, 몇 년 전보다 외화 유통량이 적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상인은 “우선 해외에서 벌어오는 돈이 예전보다 훨씬 적어졌는지 외화벌이가 잘 안 된다고 아우성이고, 거기에다 ‘고난의 행군이 다시 온다’는 소문이 나면서 돈 씀씀이가 확실히 적어졌다”며 시중의 외화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보다 구체적인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북한 내 시장 환율은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중의 외화 유통량이 줄어들면 외화의 가치가 상승해 환율이 오르기 마련이지만, 현재 북한 내 달러 환율은 대체로 1달러당 8000원선에서 미미하게 등락을 반복하고 있고, 위안화 환율도 1위안당 12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처럼 북한 내 외화 감소세가 지속되고 북한 원화를 사용하는 비중이 더욱 늘어난다면 유의미한 환율 변동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그동안은 원화와 달러 교환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아 (환율에) 반영이 안 됐는데, 달러가 희소해지고 가치가 높아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환율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북한 내에서 외화 부족이 체감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큰 거래는 외화 결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아주 작은 거래, 쌀 몇 kg이나 고기 몇 kg 정도는 기본적으로 내화로 하는데, 1만 달러 이상의 큰 거래는 가급적이면 달러나 위안화로 결제한다”고 말했다.
1만 달러는 북한 돈으로 환산하면 약 8000만 원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가장 높은 금액의 북한 화폐 권종 5000원권을 사용하면 총 1만 6000장이 필요하다.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큰 거래는 되도록 외화로 결제하는 관행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주민들의 외화 소유 욕구도 여전히 높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우리 돈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외화에 대한 주민들의 소유 욕구가 떨어져서는 결코 아니다”라며 “카드 사용을 하면서 우리 돈을 사용하는 양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조선(북한) 돈에 대한 신뢰는 저조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외화를 요구하고, 심지어 농민들도 달러를 주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상인도 “사람들이 시장에서 대체로 적은 돈을 주고받을 때는 국내 화폐, 즉 조선 돈을 주로 사용하지만, 그러나 10달러 이상부터는 외화로 받으려고 한다”면서 “국내 돈을 낼 때와는 달리 외화로 주고받을 때에는 가격을 할인해주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외화를 더 선호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인은 “2009년 화폐개혁 때 당국의 날강도 방식으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손해를 보았고 이듬해 즈음에는 ‘개인이 외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포고까지 내려와 순진한 주민들이 수중에 가지고 있던 외화를 정해진 은행에 가서 헌 가격으로 모두 교환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화는 하늘만큼 올랐고 개인들이 밀매로 외화를 사고팔고 했다”면서 “그 후부터는 사람들이 당에서 무슨 지시를 내리든 말든 절대로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당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도 주민들은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고 집안 깊숙한 곳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저축하고 있다는 게 이 상인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그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이 없다는 건 그만큼 국가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라며 “화폐개혁 후부터는 사람들이 조선 돈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도 국내 돈에 대한 신뢰도가 없을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