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참가국들은 11일 오후 제6차 6자회담 3차 수석대표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의제 합의내용을 담은 의장성명 형식의 합의문서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문서는 중국이 지난 9일 제시했던 검증의정서 초안을 수정한 내용과 경제에너지 지원-불능화 완료 계획,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 계획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까지도 북한이 ‘시료채취’를 포함한 검증 방법, 대상, 주체 등과 관련해 다른 참가국들과 심각한 이견을 보여 회담이 결렬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날 오전 북한이 입장을 바꿔 중국에 의정서 초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반전됐다.
북한은 중국에 제시한 의견문에서 ▲시료채취를 포함한 검증의정서에 대해 논의할 의지가 있으며 ▲경제에너지 제공과 검증의정서를 연계한 측에서 지혜를 발휘해 달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소식통은 “북한의 의견은 미국 등이 요구한 시료채취를 수용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며, 한국과 일본이 강조한 검증의정서-에너지 지원 연계 방침을 풀어달라는 요구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일단 북한의 입장을 존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오전 유명환 외교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합의문서 채택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서 채택될 합의문에는 북한이 거부해온 시료채취를 포함한 ‘검증의정서’ 채택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비핵화 2단계 마무리를 신속히 하자는 각국의 의지가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북한과 미국은 검증의정서에 담길 검증방법과 주체, 대상, 시기 등을 보다 세부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추가적인 양자협의와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를 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오후 4시(현지시간)께 6자 수석대표회담을 열었으며 합의문과 관련한 각국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상황에서 참가국들은 동의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의 모멘텀 자체는 유지돼야 한다는 각국의 의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6자가 의장성명 형식의 ‘합의문’을 발표한다 하더라도, 이후 북핵 폐기는 ‘산 넘어 산’이다.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이 ‘검증의정서’를 위한 추후 논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추진력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미 차기 오바마 행정부와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핵포기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실시 되는 북한이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미·북협의나 비핵화 실무회담을 통해 ‘시료채취 문서화’ 등에 합의할 경우, 이는 오바마 행정부와의 추후 협상에 바로미터가 돼 북한으로서는 용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와의 직접대화에 방점을 찍는다면 북핵문제는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과 대외정책이 꾸려지는 내년 3~4월 이후에야 본격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과의 협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북한의 협상전략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북한의 ‘시간끌기’ 전략에 미국을 비롯한 6자 관련국들이 이번 회담과정에서 말려든 꼴이다.
하지만 미국도 이날 북한이 검증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테러지원국 재지정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 이번 회담 이후 미·북 접촉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이 칼을 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시료채취’ 문제 등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핵에 대해 손을 털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며 “결국 핵포기 의사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은 “부시 행정부 내 북핵 진전은 물 건너갔다”며 다만 “부시 행정부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을)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여론 등의 압박에 따라 재지정을 하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 연구위원은 “북핵 6자회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것”이라며 “오바마 집권 후 미·북대화가 진행돼 미국은 ‘제제냐 합의냐’를 선택한 후 이것을 추인하기 위해 6자회담의 개최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부원장은 “당장 검증의정서에 대한 미·북 양쪽이 물러서기 어렵다”며 “미국으로서는 시료채취 등 기본적인 것이 포함되지 않은 검증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물러서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도 이같은 미국 등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북핵 3단계 폐기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향후 1년여 간은 조정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원장은 “미국과 북한은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부시 임기 내 북한은 미국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지 못하도록 접촉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미·북 접촉을 통해 북한을 달래 왔던 부시 행정부도 추후 협상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임기 내 테러지원국 재지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러나 북한은 대화 제스처를 통해 교묘하게 접촉을 유지할 것이며, 미국은 결국 알면서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