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축제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은 9개 종목에 선수 31명을 파견했다. 대북제재 이후 국제적 고립에 빠져 있지만, 올림픽에서는 “인민의 기대에 보답할 것”이라며 나름의 성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또한 김정은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도 직접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 최룡해 내세운 ‘스포츠 외교’, 성과 낼까…전문가 “주요국 무관심 재확인할 것”
올림픽에 참석할 북한 대표단은 김정은의 최측근인 최룡해가 이끈다. 2014년 9월부터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 중인 최룡해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장을 시작으로 조선축구협회 위원장, 조선 청소년태권도협회 위원장 등 관련 주요 직책을 두루 맡은 경력이 있다.
일각에서는 최룡해의 파견을 두고 비단 경력 때문만이 아니라, 일종의 ‘스포츠 외교’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예정에 없던 외교 활동이 이뤄질 것을 대비, 외교적 고립 탈피를 시도할 목적으로 최고위급 인사를 파견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엔 국가수반격이었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개막식에 참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다만 최룡해가 과감한 행보를 보일지라도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에서 북한 대표단을 적극적으로 환대할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설령 개최국 브라질이나 라오스, 인도, 아프리카 등 제3국에서 최룡해를 예우(禮遇)할 수는 있어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스포츠를 계기로 북한이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 낸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광인 코리아연대 소장은 5일 데일리NK에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돼버린 북한으로서는 대북 제재와 그나마 관계가 없는 올림픽에 참석, ‘국제무대에 나왔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은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계기를 만들어 고립 상태서 탈피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실제 외교적 성과를 낼 거라 보지는 않는다. 최룡해의 파견은 차라리 북한 선수단의 사기 증진을 위한 것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호 강원대 초빙교수도 “국제적 이벤트에 참여해 다른 나라 고위급 인사들과 짧게나마 접촉하는 게 고립 상태인 북한에게는 매우 큰 기회”라면서 “설령 주요국의 고위급 인사들과 만날 기회를 잡지 못하더라도, 개막식 후 돌아오는 길에 쿠바 등 우호국을 들리는 차원에서라도 북한이 소위 ‘스포츠 외교’를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체육 강국’ 만들겠다던 김정은, 소원 성취하나…“우승자 통한 체제 선전 강화”
김정은은 이른바 ‘체육광’으로 불린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제7차 노동당(黨) 대회에서도 “체육 강국 건설을 다그쳐 주체 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빛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내외에 선전할 마땅한 치적이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서 북한 선수들이 거두는 성과로 대외 선전과 내부 결속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서 4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성적을 거둔 북한 선수단이 4년 간 어느 정도의 성장세를 보였는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국외 전지훈련도 거의 없을뿐더러 국제대회 참가율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 다만 마냥 경직된 모습이던 종전과 달리, 브라질 현지에 도착한 북한 선수들이 한국 선수는 물론 외국 선수들과 친밀하게 어울리는 등 자신감 있는 모습이라고 전해진다.
북한이 파견한 31명의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각각 역도와 육상, 수영, 사격, 체조, 유도, 탁구, 양궁, 레슬링 등 총 9개 종목에 출전한다. 이중 북한이 가장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총 7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역도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역도 남자 56kg급 우승과 세계선수권 3연속 우승,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56kg급 우승을 거머쥔 북한 ‘역도 영웅’ 엄윤철이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런던 올림픽 역도 여자 69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림정심도 2연속 금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역도와 함께 체조 종목에서도 북한 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해볼만 하다. 북한의 ‘체조영웅’ 리세광과 홍은정이 금메달을 노린다. 레슬링 종목도 메달권 진입을 내다볼 수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레슬링 자유형 57kg급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은 정학진이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낼지도 관심사다.
김정은은 선대(先代)와 마찬가지로 이번 올림픽에서 우승하거나 ‘최고존엄’을 언급한 선수에게 ‘노력 영웅’ 칭호 등을 수여하면서 체제 우수성 선전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일성은 이런 칭호를 제정(1951년 7월 17일)한 이후 경제나 문화, 건설 부문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지속 수여하면서 충성심을 고취해 왔다.
특히 김정일은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 선수가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김정일)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리며 끝까지 힘을 냈다”고 찬양했다는 이유로 북한 최고의 명예칭호인 ‘공화국 영웅’을 하사한 바 있다.
◆ 올림픽 개막 동시입장 하던 南北…격세지감 될까
남북한 사이의 모든 대화 채널이 끊긴 지금, 올림픽에서 만난 양국 선수들은 어떤 모습을 연출할까.
2000년 시드니 월드컵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하늘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며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때도 있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은 52번째로, 북한은 156번째로 입장한다. 출전을 앞두고 결의에 찬 남북한 선수들의 표정을 한 장면에 담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고위 탈북민은 “해외에 나가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도 특히나 한국인 관광객을 조심하라는 지시가 자주 떨어진다는데,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는 외부인과의 접촉 시 주의해야 할 것들을 더 강하게 주입했을 것”이라면서 “고립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외신 기자들에게 어느 정도 여유 있어 보이는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지만, 북한 선수들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대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