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숫자방송 통해 실제 공작원에 지령하달 가능성”








▲ 영화 ‘의형제’(2010년작, 감독 장훈)서 남파공작원 송지원(강동원)은 난수방송을 듣고 북한 당국의 지령을 수행한다./사진=영화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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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주 만에 대외용 라디오 매체인 평양방송을 통해 새로운 내용의 난수(亂數) 방송을 내보냈다. 평양방송은 12일 정규 보도를 마친 0시 45분(한국시간 오전 1시 15분)부터 4분 30초간 여성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다섯 자리 숫자를 내보냈다. 이번 방송 내용은 북한이 앞서 지난달 15일과 29일 내보냈던 난수 방송과는 달랐다. 북한은 지난달 15일부터 14일 간격으로 금요일마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북한이 16년 만에 난수 방송을 재개한 것과 관련해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대남심리전 목적이 아닌 특정 공작원을 대상으로 한 북한 당국의 지령이란 주장이 나온다.
 
북한의 대남 공작업무에 정통한 익명의 한 전문가는 12일 데일리NK에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난수방송이 대남 공작원들 사이에서는 ‘숫자방송’이라고 불려진다”면서 “북한이 숫자방송을 재개한 것은 반드시 의도가 있고, 이는 대남공작과 연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숫자방송(난수방송)의 특성상 지령은 한번만 내릴 수가 없다. 반드시 다른 수단을 통해 반복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북한 당국은 이미 다른 수단을 통해 지령을 반복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다른 수단을 통해) 반복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여러 수단을 통해 난수방송을 내보내던 1990년대 상황을 예로 들어 북한이 지령을 내보내는 방식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같은 지령을 다른 형태로 총 8번 반복해서 내보낸다.


그는 “예를 들어서 지령은 방송을 통해 12일 밤 12시에 내보내진 후, 13일 새벽 1시 30분에 무전(모스 부호)으로도 보내진다. 또한 13일 밤 12시에 같은 내용이 방송으로 내보내지고, 14일 새벽 1시 30분에 무전으로 보내지는 식”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우선 이렇게 하면 같은 전문이 4번 나오는 셈”이라면서 “또한 그 당시엔 여성 아나운서가 방송을 다른 형태로 2번씩 불러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12345’라는 숫자가 있으면, 이 숫자를 여성 아나운서가 처음에는 ‘백 이십삼 사십오’ 라고 불러주고 두 번째 말할 때에는 ‘만 이천 삼백사십오’라고 반복해서 불러준다”고 설명했다. 즉 방송-무전-방송-무전-아나운서 음성을 통해 같은 내용이 총 8차례 반복되는 셈이다.


그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지금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방송을 통해 지령을 보낸다는 의미는 달라질 것이 없다”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남심리전의 영역도 분명히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에서 지령을 내보낸다는 의미가 대남공작과 직결된다는 것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지난 8일 “북한이 실제로 남파 간첩에게 지령을 내릴 목적으로 재개했을 가능성이 크다. 간첩망이 잘 가동되는지 확인할 속셈도 있는 것 같다”면서 “남파 공작원들이 실제 난수 방송을 통해 지령을 받아 탈북 인사 암살이나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北 공작원들, 숫자방송으로 인식…‘변신(變信)’ 학습 집중적으로 받아


그렇다면 숫자방송, 지시문 방송 등으로도 불리는 난수방송(亂數放送)은 무엇일까.


난수방송(Numbers Station)은 숫자나 문자, 단어 등의 나열을 조합한 난수를 사용해 만든 암호를 특정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출처 불명의 방송을 말한다. 각종 정보기관이 “현장”에 있는 요원에게 전하는 내용을 담은 숫자 및 문자 등을 조합한 난수 형태의 암호를 부르는 형태의 방송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암호화가 되어있고, 그 숫자나 문자들을 해독하기 위한 올바른 키(난수표 등)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해독할 수 없다. 단순한 라디오 장비로도 쉽게 청취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해독하는 데 긴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북한은 2000년까지 난수방송을 꾸준히 해왔으나 6·15 정상회담 이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북한이 내보냈던 난수방송 녹음은 웹 사이트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영화 ‘의형제’(2010년작, 감독 장훈)서 남파공작원 송지원(강동원)이 난수방송을 해독하기 위해 사용했던 난수책 ‘부활’. 공작원은 파견되기 전, 어떤 난수책을 통해 난수방송을 해독할지 사전에 철저하게 약정한다고 한다./사진=영화 캡쳐

과거 북한의 공작원들은 남파되기 전 난수방송의 전문을 ‘변신(變信, 신호를 변환)’ 시키는 방법에 대한 학습을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해독하는 방법 자체를 어딘가에 써서 가져오기 쉽지 않아 통째로 암기해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전문가는 “공작원 교육을 시킬 때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이 ‘변신’이다”면서 “신호를 변환시키는 방법, 그러니까 해문·해독하는 방법을 파견 전에 엄청나게 연습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자 하나, 숫자 하나만 틀려도 전문을 해독할 수 없다. 그 당신 맨 몸으로 파견을 보냈기 때문에 A4 용지 기준으로 1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한다”면서 “강의 등을 통해 공작원을 교육시키고, (교육 받고 파견된) 공작원으로 하여금 남한 내 지하당 거점 사업을 하는 인물들에게 ‘변신’하는 방법을 다시 교육시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에는 파견 전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는 훈련도 진행했다”면서 “공작원들이 숫자 6과 9, 숫자 1과 7를 헷갈려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난수방송을 해독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약정된 난수책을 활용하는 방법과 공작원이 난수표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는 “파견되기 전에 어떤 책을 사용해서 해문 할 것이지 서로가 약속을 해야 한다. 또한 해문에 적용되는 단어는 “‘검’ ‘총’ 등 한 글자는 쓰지 않고 보통 ‘손님’ ‘아침’과 같은 두 글자를 사용해야 했다”면서 “단어를 왼쪽에서부터 찾을 것이지 오른쪽에서부터 찾을 것인지, 기준이 되는 숫자를 윗줄 혹은 아래 줄에서부터 찾는 것인지 등 모든 것을 약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 영화 ‘의형제’(2010년작, 감독 장훈)서 남파공작원 송지원(강동원)이 난수방송을 해독하는 장면. /사진=영화 캡쳐

또한 그는 “때로는 서로 약정한 책에 없는 단어도 사용해야 할 때가 생긴다”면서 “그 때 필요한 것이 난수표이고, 이것 역시 약정된 방법으로 만든다. 보통 자음·모음·숫자를 모두 활용하여 만드는 방법이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북한은 난수 방송을 6월 24일과 7월 15일과 29일, 그리고 이날까지 모두 네 차례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