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불상종’을 공언했던 북한이 수해지원 제의에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힌 것은 대남 공세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실익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태풍 볼라벤에 이은 가을 호우로 북한 내 인명과 재산 피해가 크게 늘었다. 식량과 복구장비 등이 다급한 상황이다. 대내외 매체를 통해 수해 사진과 함께 피해 현황을 연일 공개하고, 유엔과 국제적십자기구에 피해사실을 신속히 알린 것도 지원이 절실하다는 반증이다.
첨예한 대결구도를 유지했던 남한 정부에 갑작스레 손을 벌린 것은 이러한 내부 사정이 우선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원 협의가 긍정적으로 진행되면 중장비 같은 건설용 물자가 포함된 지원을 추석 전에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할 수 있다.
비록 협의가 잘못되더라도 고스란히 남한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비(非) 대면접촉 방식을 통보한 것도 이 같은 계산이 깔려있다는 판단이다. 남측과의 수해지원 협의에 나섰다는 점을 함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그만큼 다급한 실정이 반영된 것”이라며 “일단 수량·품목 등에 조건을 내세웠기 때문에 자기들 입맛에 맞으면 좋고(수용하고), 원하는 수준이 아니면 남측의 ‘생색내기’라고 받지 않을 수 있는 기초를 깔았다”고 했다.
품목, 수량을 먼저 얘기해달라고 한 것은 사실상 공을 남측에 떠넘긴 것이라는 지적이다. 11일 정부 당국자가 “고도의 전략적 주고받기”라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북측의 의도를 반영한 발언이다.
정부가 쌀과 시멘트 등 군사적 전용가능성이 있는 물품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이유도 지난해와 같이 수량·품목에 꼬투리가 잡혀 정치적 공세의 빌미를 주기보다는 향후 남북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해 지원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등을 위한 후속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수해지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연일 대남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신문은 11일 ‘대결 정권 타도는 시대의 요구’ ‘전쟁위험을 증대시키는 도발적 망동’ ‘타들어가는 도화선’ 등 제하의 기사를 싣고, 반(反)이명박 정부·반(反)새누리당 투쟁을 선동했다.
특히 ‘대결 정권~’에선 “리명박 패당은 입만 벌리면 그 무슨 ‘진정성’을 떠들고 ‘북의 도발’이니 뭐니 하면서 마치도 북남관계 파국의 책임이 우리한테 있는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