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뇌물시장경제의 등장: 회생인가 붕괴인가?
2015년 4월 두 명의 영국기자인 다니엘 튜더(Daniel Tudor)와 제임스 피어슨(James Pearson)은 『NORTH KOREA CONFIDENTIAL』을 출간하였다. 남과 북의 영국대사들이 추천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들은 북한정권의 극심한 인권탄압을 책에서 자세히 기술하면서도,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사회변화의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고난의 행군’과 대량 아사 이후 북한사회는 매우 역동적인 사회로 탈바꿈 중이다. 전체주의 통치체제는 계속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주도 통제경제가 붕괴함으로써 북한사회는 사실상 장마당 시장경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또한 사회 전체가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뇌물 만능사회’로 이미 바뀌었으며, 특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자’와 사업이익의 분배와 뇌물을 매개로 손을 잡은 신흥 사업가 계급이 맹활약 중이다. 즉 김家네를 포함하여 지배계급 전체가 ‘뇌물을 위한, 뇌물에 의한, 뇌물의 통치’를 하고 있는 바, 이 뇌물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활동을 위해 지불되고 있다. 동시에 신흥사업가 계급은 뇌물과 결혼을 수단으로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은 전통적인 성골(聖骨) 정치지배집단과 진골(眞骨)이나 육두품(六頭品) 신흥사업가들이 손을 잡고 ‘뇌물정(Bribecracy)’ 혹은 ‘뇌물시장경제’로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외화벌이 회사와 내수용 공장들은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의 상당부분을 은닉하거나 생산물을 장마당에 빼돌리는 방법으로 횡령을 하는 데, 그 상당부분은 권력자에게 상납한다. 외국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 식당은 대부분 실력자의 부인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데, 자본금에는 김家네에게 상납하는 ‘낮은 6자리 수의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실세들과 손을 잡은 신흥 돈주들은 군대의 노동력을 거의 무상으로 사용하여 평양에 아파트와 상가를 건설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저자들에게 중요한 점은 뇌물경제사회의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모든 권력 행사에는 정확히 그 역방향으로 뇌물 상납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 이 뇌물 상납과 각종 이권의 교환이 붕괴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지배계급은 뇌물수수와 이권판매를 지배집단의 유지에 필요한 주요 자원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석탄을 비롯한 대중무역을 독점한 장성택이 처형된 이유의 일부도 이점에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는 권력의 동심원 구조를 이루고 있는 데 그 중심에 지도자가 자리잡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경우 모든 뇌물 역시 동심원 체제의 구심력에 의해 궁극적으로 김정은에게 향해야 한다. 만일 동심원 지배 구조에 중심이 둘이 있다면 그것은 체제유지의 인적・물적 자원이 분할되는 것을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극심한 권력투쟁과 체제붕괴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NORTH KOREA CONFIDENTIAL』의 저자들은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들은 아무도 북한의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중단기적으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차라리 뇌물시장경제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사업가들이 점차 북한을 개방사회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희망어린 예측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시장경제활동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바로 북한의 수령체제라는 점에서 결코 체제붕괴나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II. 북한과 소말리아
북한과 소말리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국제투명사회기구(Transpara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14년 부패체감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에서 영광의 공동 1위가 그것이다. 가장 깨끗한 사회가 100점, 완전히 부패한 사회가 0점인데, 북한과 소말리아는 8점으로 세계 최고의 부패력을 과시하였다. 2012년 이후 조금 안정되기 시작한 소말리아는 1990년 초반 이후 20년간 과도정부에 의해 유지되었던, 사실상 무정부상태나 다름 없는 국가였다. 2011년 한국 해군이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통해 소말리아 해적떼들에 의해 납치된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하여 알려진 나라다.
다른 한편 소말리아와 북한은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민주주의지수(1~7점)에서도 모두 최악(7점)의 국가로 평가되고 있는 데, ‘최악 중에서도 최악(Worst of the Worst)’으로 분류된 나라들의 면모를 볼 때(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내용적으로 북한은 그 이상의 점수가 없어서 그렇지 ‘최악 중의 최악에서도 단연 최악’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2003년 이후 십년 넘게 유엔인권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성명서와 경고를 발하는 곳은 북한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북한이 소말리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수가 있다. 그것은 ‘실패국가지수(Failed States Index)’ 혹은 ‘붕괴위험국가지수(Fragile States Index)’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과거에는 소말리아가 1등을 차지하였지만 2015년에 남수단에게 약간의 차이로 밀려 2위가 되었다. 이 지수는 높은 쪽이 망할 국가에 가깝다. 붕괴위험국가에는 ‘매우 높은 경고(Very High Alert)’, ‘높은 경고(High Alert)’, ‘경고(Alert)’의 세 범주가 있는 데, 소말리아는 첫 번째에 속하지만 북한은 세 번째 범주에 속하여 전체 29위이다.
붕괴위험국가지수는 총 12개의 영역을 고려하고 있는 데, 이중에서 ‘인구압력, 난민, 집단비애, 탈출’을 제외하고 나머지 8개 영역인 ‘비균형 발전, 가난과 경제적 쇠락, 국가정당성, 공공서비스, 인권, 공안, 엘리트층 당파화, 외부개입’만을 기준으로 보면 북한은 전체 10위이다. 다시 ‘가난, 국가정당성, 인권’을 기준으로 보면 남수단에 이어 2위이며, ‘국가정당성’만을 놓고 보면 남수단과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제외한 4가지 영역의 문제를 북한의 수령전체주의가 누르고 있다고 본다면 북한이 최악의 붕괴위험국가군에서 벗어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정치범 수용소, 성분제도, 세뇌교육 및 상징조작과 신화날조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수령전체주의이다.
III. 뇌물시장경제와 수령전체주의
북한에서 뇌물시장경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흥 사업가들이 정권의 실세와 결탁하여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대규모 사업과,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 경제를 영위하기 위하여 인민반장 및 직장에 뇌물을 주고 하는 소규모 사업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북한의 시장경제는 위에서 아래로의 권력의 선을 따라 그 역방향으로 뇌물을 상납함으로써 실행되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다니엘 튜더와 제임스 퍼슨의 예측, 즉 북한의 뇌물시장경제의 생존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은 설득력이 있을까? 물론 저자들은 북한과 같은 비정상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미국 자유기업원의 에버슈타트(Eberstadt)의 말처럼 국가의 붕괴예측은 과학(Science)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Art)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전체주의와 뇌물시장경제가 한 몸이 된 상태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가능성 혹은 이러한 특이한 정치・경제체제 자체의 지속가능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부패가 심한 국가의 경제수준이 낮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사회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에너지, 교통, 교육 등 사회인프라 구축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단발성 사업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패와 경제발전과의 상관 관계는 한 방향만이 아니다. 경제발전이 부패를 줄일수도 있다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발전으로 관료계급의 급료가 올라 뇌물수수의 원인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베트남의 기업 수천개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Does Economic Growth Reduce Corruption? Theory and Evidence from Vietnam, 2013)에 의하면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기업친화적이고 뇌물을 덜 요구하는 지방으로 공장을 옮겨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뇌물비용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개발시대 한국은 물론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동구권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에서 뇌물수수는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에서 경제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경제개발방향이 옳았기 때문이다. 즉 대외개방형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으로 경제발전의 토대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의 수령전체주의와 한 몸이 되어버린 뇌물시장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고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