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소비재보다 생산지원 중요…서로돕기 돼야”

“민간단체(NGO)는 정치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NGO는 한반도에서 평화의 메신저가 돼야 합니다.”

1996년 대학교수직을 내던지고 북한을 비롯한 국내외 구호활동에 투신, 대북 지원단체의 ‘대부’가 된 김형석(金亨錫) 한민족복지재단 회장은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NGO의 역할을 이렇게 강조했다.

10년 동안 북한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분단 이데올로기의 파도를 헤쳐온 그는 “보수다 진보다, 좌다 우다 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NGO는 순수성과 전문성만 갖고 있으면 정부가 못하는 일까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이런 목소리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잔뜩 굳어진 남북관계 상황에서 북한의 대규모 수해에 대해 남측 민간단체를 시발로 한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해빙 기대감을 이끌고 있는 터라서 더욱 크게 들렸다.

그는 이어 그동안의 풍부한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북 지원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다각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은 “북한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는 당장 급한 소비재 지원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생산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가동 중단된 기존 공장 재가동이나 농업 기계화와 신농법 전파, 다양한 경제작물 재배법 등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런 차원에서 올해부터 평안남도 숙천군 협동농장의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배 규모인 240만 평의 논에서 노동력이나 생산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증산효과를 내는 복토 직파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다양한 생산지원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돕기’를 뛰어넘어 남북 교류 확대를 통해 ‘서로 돕기’로 갈 수 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쌀, 옥수수, 감자 등 3대 작물을 비롯해 남한에서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메밀, 콩 등 곡물을 풍부하게 생산하면 남한에서 남아도는 쌀과 맞교환하는 구상무역이 활성화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일방적인 지원을 둘러싼 반대여론도 줄게 되고 남북한 서로 도울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북 지원 분배확인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쌀을 지원하는데, 북한 주민들에게 정말 전달되는 지, 아니면 제3국에 팔아먹는 지 의심하기도 하고 오해도 많다”면서 “그런데 분명한 것은 북한을 방문해보면 포장 겉면에 ‘대한민국’이나 ‘적십자’가 표기된 쌀을 주민들이 받아가거나 남한에서 지원한 비료를 농민들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또한 “그동안 정부가 대북 지원을 그때 그때 정치적으로 하면서 북한 내 전달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특히 식량지원을 차관으로 전환하다 보니 북측에서 ‘빌려가는 데 웬 간섭이냐’는 식으로 나오는 경향도 있다”면서 “앞으로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니터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대북지원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대북 지원창구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이번 북한 수해에 대한 지원에서 취한 것처럼 대북 지원시 정부의 직접 지원 이외에 국제기구나 민간단체와 함께 하는 ‘3자 공동지원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 지원단체가 북한에 너무 ‘저자세’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인식은 남북 간 체제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부를 보고 하는 말”이라며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할 때 먼저 현장을 방문하고 실태를 파악한 다음 제안서를 내서 사업을 확정짓는데 반해 북한은 먼저 당국의 승인이 떨어져야 그때부터 움직이다 보니 사업 추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북한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이런 문제는 북한이 아직 글로벌 스탠더스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점점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북 지원단체 간 일각에서 드러나고 있는 ‘깎아 내리기’ 경쟁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처럼 열악한 여건에서 많은 NGO들이 활동하다 보니 그런 양상을 보일 수 있다”면서도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불필요한 경쟁을 하기보다 각 단체별로 장.단점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총신대 역사학 교수에서 국제구호활동가로 변신하게 된 동기를 묻자, 그동안 수도 없이 질문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어조로 짧은 ‘역사강의’를 했다.

그는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역사적 인물, 역사적 과제에 충실한 인물이 돼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며 “1990년대 역사적 과제로 동서.남북갈등 해소를 통한 민족의 통합과 세계 10위권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사회 기여를 강조해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런 이론적 강조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자들이 이를 실천하고 활동할 장이 없고 여건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고 직접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줄곧 ‘실천하는 지성’이라는 점잖은 별명을 달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어린이 급식사업, 병원현대화사업, 의약품나누기사업 등 대북 지원사업과 중국, 예멘, 수단 등 15개국에 지부를 두고 보건의료 봉사를 펴는 등 국내외 구호활동의 맨 앞에서 ‘반백(半白)’의 머리칼이 백발에 가까워지도록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母胎) 신앙인으로 전국의 수많은 교회를 비롯한 후원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김 회장과 한민족복지재단이 내미는 손길이 어디까지 따뜻한 체온을 전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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