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설날, 특권층-노동자 명암갈려

탈북자들의 합동차례(사진:연합)

필자는 남한에서 세 번째로 설 명절을 맞는다. 설이 오면 고향생각이 나서 친구들과 파주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올라 고향을 향해 술을 붓는 실향민 1세들과 자리를 같이한다. 그러면 쓸쓸한 추억을 추슬러 북한에 두고온 고향과 부모님들, 친지들에게 드리는 속죄의 인사를 드리는 것 같아 마음에 한 가닥 위안을 느낀다.

남한의 설 명절을 보니 북한에서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로 민족의 정서와 얼이 무참히 짓밟혔다”고 들어왔던 것과 정반대다. 남한의 설 명절은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특권층은 ‘아랫사람 상납’으로 명절 기다려

북한에서는 설 명절을 ‘음력설’이라고 한다. 음력설은 특별한 의미는 없고 대체로 하루 휴식하는 데 그친다. 1960년대 북한에서는 봉건주의와 복고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반종파투쟁을 벌였는데, 그 결과 우리나라 전통의 미풍양속과 관례까지 포함되었다. 국가적인 명절순위는 김일성, 김정일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규정하고 이어서 당 창건일, 공화국 창건일을 4대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민속명절(民俗名節)로는 양력설(신정), 음력설, 단오, 추석이 꼽힌다. 사람들의 인식이 음력설은 명절처럼 생각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4대 명절에는 고기와 술 한 병씩 공급하지만 이날은 그것도 없다. 만약에 음력설이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잡혀있으면 음력설에는 놀고 일요일날 대신 나가서 일해야 한다.

그래도 설 분위기는 조금씩 남아 있다. 음력설이 오면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다. 아침에 조상을 모시는 노인들은 간단한 차례상을 준비하여 사진을 놓고 절을 한다. 장손이 절을 대표로 하고 직계손자까지는 옆에서 목례로 대치한다. 딸이나 며느리는 직계에서 제외되어 밖에 내보내 참가시키지 않는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상을 물리고 준비한 음식을 올려 술도 한잔씩 한다.

지방에서는 명절분위기가 조용한 편이지만 평양시는 국가적으로 조직하는 명절게임이 몇 가지 있다. 어린이들이 대동강변에서 연놀이와 팽이치기, 제기차기 하는 모습이 중앙TV에 비치곤 했다. 또 TV에는 도(道)별로 윷놀이와 장기두기, 바둑을 두는 모습을 방영함으로써 민족적 풍습을 살려나간다는 취지로 대외선전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세뱃돈은 양력설에 주는 관습이 있는데, 음력설에 손자들에게 쥐어주는 사람들은 비교적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할 뿐 노세대가 지나면 서서히 사라진다.

북한은 외견상 사람들마다 차이가 없고 평범한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사는 집단이다. 북한에도 부유한 사람들과 중간층, 빈곤층, 극빈자들이 있다. 당연히 명절을 잘 쇠는 사람들이 있고, 명절이 오면 근심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노동당 계열의 특권층과 관료들은 명절을 빌미로 하층으로부터 진상품을 챙기고 선물과 기념품을 받는, 말하자면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다. 국가와 아랫사람들로부터 명절준비에 필요한 음식자재와 상품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자들과 사회극빈자들은 아침에 밥 한그릇 해먹을 쌀 때문에 걱정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한달치 월급을 받는다 해도 쌀 2~3kg밖에 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명절에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다.

90년대 식량난이 심각했던 시절에는 설날에 쌀밥 해먹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니 음력설은 일반주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날로 간주된다. 일부 돈있고 권세있는 사람들은 명절준비를 잘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일이 끊기는 날이라 오히려 몹시 불안해한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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