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선전물, 러시아 지식인들 최고 웃음거리”

수십 년 동안 소련과 북한은 서로 동맹국가로 보고 ‘친선’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

1945년까지 소련은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1945년 한반도가 해방을 맞은 이후 소련 통제 밑에 있었던 북한을 소련 사람들은 또 하나의 ‘인민민주주의국가’로 봤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련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소련 사람 대부분은 북한이 ‘미제(美帝) 침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선전을 그대로 믿었다.

필자도 한국전쟁을 시작한 측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1980년대 초 한국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당시 소련의 교수들은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말했으나, 출판물에는 물론 ‘미제의 침략’이라고 주장했다. 소련 사람들은 ‘침략의 희생자’인 북한을 자연스럽게 동정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북한을 보는 소련의 관점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1950년대 말의 스탈린 격하운동은 대부분 소련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스탈린 격하운동의 결과, 비록 제한적이긴 했지만 스탈린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자유를 얻었다.

북 우상화 선전물, 소련 사람들 유머용으로

1960년대에 들어와 소련 국민, 특히 소련 지식인들은 스탈린 시대를 악몽처럼 기억했다. 그래서 스탈린주의 정책을 변함없이 계속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이나, 김일성의 북한은 아무런 공감을 얻지 못했다.

1960년대 서방세계의 이른바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마오쩌둥의 대량암살 독재를 찬양했으나, ‘혁명적인 폭력’을 자기 몸으로 직접 체험했던 소련 지식인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소련 지식인들은 김일성의 북한을 악몽의 현실적인 표현으로 봤다.

당시 소련 사람들은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선전을 기묘한 눈길로 보았다. 북한의 우상화 선전물보다 북한의 대외적인 위신을 깎아내리는 것도 없었다. 북한은 스스로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기 위해 선전한 꼴이 되었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선전물은 소련 사람들에게 최고의 웃음거리를 제공해주었다. 70년대에 북한 당국이 후원해주어 아주 싼 값으로 구독할 수 있었던 <조선>이라는 잡지를 보며 소련 사람들은 마음껏 웃었다. 북한 선전물에서 나오는 기이한 우상화 이야기는 소련 사람들 사이에 유머용으로 많이 유포되었다.

지금 러시아의 중년 지식인들 중에 이 잡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 선전물에 등장하는 글을 수집하여 웃음거리로 제공해주는 러시아어 웹사이트까지 있다.

지난 2월 13일 소련의 인기 일간지 ‘MK’는 김정일 생일을 사흘 앞두고 김정일에 대한 글을 게재했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이 항의했을지 모르지만, 이 글은 전체가 북한 선전매체에서 나온 자료만 활용하여 쓴 것이다. 물론 러시아 사람들이 제일 기묘하게 생각하는 부분만 자료로 이용되었다. 글을 보며 ‘즐겁게 웃자’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1990년을 전후하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대가 많았던 당시에 소련에서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러시아의 유명한 역사가이자 작가인 벨쉬닌(Lev Vershinin)은 가상적인 공산주의 독재사회의 부패와 이 독재를 쓰러뜨린 민주혁명을 묘사하는 소설을 발표했다.

한국어로는 <막판>으로 번역되는 이 소설의 가상적 독재사회는 북한, 루마니아, 쿠바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소설에 나오는 지명도 한국 이름으로 되어 있다.

러시아 對北관점, 실용주의 우선

그러나 소련방 해체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의 북한관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는 10년 전에 ‘만병통치약’으로 믿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았다.

하루 아침에 2등 국가로 추락한 것을 민족의 굴욕으로 보는 러시아 사람들이 있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를 상대로 강한 민족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반미(反美)정책을 펴는 북한이 일정한 공감을 얻게 되었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북한을 지지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북한의 국내정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북한의 대외정책, 즉 반미 입장에만 감탄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들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북한을 보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가 대외정책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 객원칼럼니스트(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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