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새정부에 ‘우려 속 관계 지속 희망’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 이후 지금까지 이 당선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북한은 이 당선인의 취임 후에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당분간은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작년 12월 대선 이후 이 당선인의 취임을 하루 앞둔 24일 현재까지 2개월째 이 당선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엔 대선 후 3일안으로 당선 사실을 보도하면서 당선인에 대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자신들의 입장이나 주문을 곁들인 것과 대조된다.

북한은 이번엔 대남기구나 노동신문 등 공식매체를 통해 이렇다할 논평이나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남북경협의 장단기 그림을 그린 10.4 남북정상선언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하에 ‘외세공조’ 대신 ‘민족공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만 펴고 있다.

또 남북도로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 문산∼봉동간 철도화물 수송을 비롯한 제2차 국방장관회담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군사실무회담 등 남북 당국간 실무회의에도 나서고 있다.

이는 북한이 이 당선인에 대한 침묵 속에서도 남한의 새 정부와 남북간 협력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소장은 “10.4선언 자체가 북한이 남쪽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남북 화해협력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은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남북교류를 이어가야만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어느 정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대북 포용정책 결과 남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남북 화해와 협력관계를 섣불리 먼저 파탄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당장 남한의 비료 등 지원없이 한해 농사가 어렵고 발등의 불인 식량난은 더욱 해결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5년 후인 2012년 경제강국을 이룩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고 북한 주민들을 달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선인의 대북정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거나 남북간 주요 현안이 당면하기 전엔 북한의 지켜본다는 태도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으로서는 남북협력이라는 현재의 구도를 먼저 깸으로써 비난을 자초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새 정부의 대북정책 등이 구체화되면 이를 계기로 가시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이 당선인과 인수위측은 경제, 한미동맹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일종의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 전략이라 할 만한 태도로, 북한 정권이나 핵문제, 남북관계 등에 대해 말수가 적었다.

또 이 당선인이 드물게 북한에 관해 언급한 내용들도 북한이 딱부러지게 판단을 내릴 만큼 메시지가 어느 한 방향으로 뚜렷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당선인이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나는 단지 국내 정치를 위해 형식적인 정상회담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지난달 17일 외신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것은 “도전적 발언”이 아니라 “보다 솔직한 대화”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것,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 문제에 대한 언급 등이 그렇다.

비핵.개방3000 구상 자체도 이른바 비핵화 ‘전제론’이냐 아니면 ‘단계론’이냐가 분명치 않다.

6자회담 상황이나 대미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희구 등도 북한이 새로운 대남관계 설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부시 행정부 임기내 북미관계 활성화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가 올해 상반기에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특히 북미관계가 진전된다면 북한은 유리한 협상 위치에서 대남전략을 구사해 나가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록 우회적이긴 하지만 북한이 이 당선인과 그의 새 정부에 대한 불만을 점점 뚜렷하게 표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대외홍보용 주간지 통일신보(1.26)는 10.4 남북정상선언가운데 각종 경협 사업에 대한 이 당선인과 인수위측의 ‘재검토’ 입장을 “온당치 못한 잡소리”, “10.4선언을 깎아내리고 실천을 훼방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반시대적 반통일적 망동은 찾아볼 수 없다”는 등으로 맹비난했다.

북한 당국을 대변하는 공식매체가 아니고, 이 당선인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10.4선언 재검토론에 불쾌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은 틀림없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이 2월21일 남한 언론의 대북보도 태도를 비난하는 가운데 “우리는 남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고 앞으로 계산할 때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인수위의 한미일 3각 협력체제의 복원.강화론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미사일 방어체제(MD) 참여문제 논란에 대해서도 미국과 일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남한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이 해마다 2월 말께나 3월 초 농사철을 앞두고 비료지원을 요청해 왔으나,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새 정부에 대한 탐색전을 떠나 약한 입장을 남한의 새 정부에 보이지 않으려는 기싸움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이 비료지원 요청을 해온다면 그에 대한 새 정부측 입장, 현재 국회에 계류된 남북총리회담합의서가 17대 국회의 임기만료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을지 여부 등은 북한이 남한의 새 정부에 대한 입장을 결정.표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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