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상인들 “세금이 사람 잡아 먹는다”

▲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김영옥씨.

함경북도 청진에 살던 김영옥(가명. 42세)씨는 지난 6월 12일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두만강을 넘었다. 김씨는 30살에 과부가 되어 10년 동안 청진시 송평구역 장마당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했다. 그러나 두 아이를 굶기지 않고 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까지 가르치겠다던 목표를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매월 소속공장에 바치는 세금이 5천원, 장마당 자리세가 5천원, 두 아이들이 학교에 바쳐야 할 돈이 2만원이 넘었다. 여기에 인민반에 바치는 세금, 각종 국가사업에 바쳐야 할 세금까지 모두 합치면 월 4만원에 육박한다. 한달 벌이 8만원 중 절반을 떼내고 나면 세 가족이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다음은 중국 창바이(長白)에서 만난 김영옥씨와의 인터뷰.

– 왜 탈북했나?

“내가 하루에 장마당에 나가서 하루 3천원도 못 버는데 지금 입쌀 1kg에 900원씩 한다. 우리 아들은 한창 성장기라 식성이 좋아서 혼자서 하루에 쌀 1kg을 먹는다. 나와 우리 딸이 합쳐 1kg을 먹는데, 하루 쌀값만 2천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옥수수 죽도 자주 먹었다.

여기에 부식 좀 사고 겨울에는 땔감이나 석탄을 사고 나면 아이들 학교 갈 때 쥐어줄 돈이 없다. 그냥 학교에 보내자니 굶게 생겼고…먹지도 못하고 학교에도 못 갈 바에야 무엇 때문에 고생하며 사나 싶어 중국으로 넘어 왔다.”

– 어떻게 국경을 넘었나?

“친오빠가 사는 회령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다리를 놔줘서 국경수비대 중대장에게 돈을 주고 국경을 넘었다. 탈북하기 직전 동업하던 아주머니에게 매대(좌판)를 팔고 받은 권리금 5만원을 국경수비대에 줬다.”

– 언제부터 장사를 시작했나?

“94년도까지 청진에 있는 00피복공장에 다녔다. 피복공장은 러시아에 파견 나가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제작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미싱사로 일했다. 그런데 94년도부터 공장에 원자재가 없어 가동을 중단했다. 배급도 끊겼다. 할 수 없이 95년부터 청진시 송평구역에 있는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했다.”

– 무슨 장사를 했나?

“생선장사를 했다. 계절에 따라 명태, 이면수, 낙지(북한에서는 한국의 ‘오징어’를 낙지라 부른다-편집자), 게 등을 팔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랑 동업을 했는데 내가 장마당 매대에서 생선을 파는 날은 그 아주머니가 청진항에 가서 생선을 도매로 사오고, 내가 청진항에 생선을 가지러 가는 날은 그 아주머니가 매대에서 장사했다.”

공장은 노동자들 돈 걷어 국가에 세금 바쳐

– 그럼 피복공장은 그만둔 것인가?

“아니다. 아직도 서류상에는 그 공장의 노동자로 등록되어 있다. 공장에 출근하지 않는 대신 한 달에 매월 5천원을 바쳤다.”

북한은 원칙적으로 모든 주민들이 공장 등 직장에 무조건 소속돼 있어야 한다. 공장 노동자는 각자 할당된 월 생산량을 채워야 하는데, 에너지와 자재가 없으니 공장을 돌리지 못한다. 그 대신 원칙(?)은 지켜야 하니까 부득불 할당 생산량 대신 각자 돈을 벌어 공장에 바치는 것이다.

– 가동이 중단된 공장인데 왜 세금을 바치나?

“국가에서는 지금도 매해 분기마다 우리 공장에 생산목표를 내려 보낸다. 생산이 멈춘 줄 뻔히 알면서도 세금을 걷기 위해서 그런다. 그러니까 공장 지배인이나 당 비서는 노동자들에게 돈을 걷어 국가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다.

지금도 그 피복공장에 등록된 노동자들이 대략 100명쯤 되는데,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걷는 세금이 한 달에 50만원이 넘는다. 거기서 공장지배인이나 초급당 비서 같은 간부들의 생활비를 떼고 나머지는 국가에 세금으로 바친다.”

– 요즘 장마당 사정은 어떤가?

“한 개의 매대 자리가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 정도 되는데 이 매대를 두 집이 나누어 쓴다. 그러니까 우리 매대는 가로 1미터 50정도, 세로 2미터 정도 되었다. 나는 상설 장마당이 생기기 전부터 그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2002년에 새로 매대를 들여놓을 때에 매대를 부여 받았다. 물론 한달에 5천원씩 장마당 관리소에 세금을 낸다.”

– 청진항에서 도매로 생선을 사오나?

“매일 새벽 청진항에 나가면 고깃배들이 들어 온다. 새벽마다 자전거 뒤에다 달구지를 묶어 생선을 싣고 온다. 한번 나가면 약 50kg 정도 생선을 사오는데 우리 장마당과 청진항의 거리가 8km 정도 된다. 그 거리를 자전거로 왕복하면 다리가 버텨내지 못한다. 그래서 동업하는 아주머니랑 하루씩 번갈아 가며 생선을 사러 간다.”

– 수입이 어느 정도 되었나?

“하루 이윤이 5~6천원 정도 된다. 그것을 동업하는 아주머니랑 반씩 나누니까 하루 수입이 3천원이 채 안 된다. 한달에 8만원 정도 버는 것 같다.”

한달에 8만원 벌면 국가에 4만원 바쳐야

– 한달에 8만원이면 굶지는 않는가?

“그저 세끼 밥만 먹고 산다면야 굶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 것까지 생각하면 그 돈으로는 턱도 없다. 우선 국가에 바치는 세금이 너무 많다. 우선 공장에 내야 할 세금이 매달 5천원, 장마당 매대 값으로 매달 5천원이다. 여기에 내가 사는 주소지의 인민반에 내야 할 세금이 400원이다.

나와 아이 둘 이렇게 해서 300원에 내가 세대주니까 또 100원 더 낸다. 이게 매달 고정적으로 내는 돈이고 시시때때로 각종 국가사업에 대한 돈을 내야 한다. 여기에 또 7~8천원 든다. 국가에서 ‘백두밀영 혁명사적지'(김일성-김정일 사적지)를 꾸린다고 돈을 내라고 하고, 청진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가져다 쓰니 또 돈을 내라고 한다. 여기에 아이들의 학교에 바쳐야 할 돈까지 있다.”

– 북한은 무상교육이 원칙 아닌가? 무엇 때문에 학교에 돈을 내는가?

“무상교육은 옛날 말이고, 국가에서 학교에 내려주는 돈이 전혀 없다. 교원들도 국가 배급을 전혀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교원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해야 하니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돈을 걷어서 교원들 월급도 주고, 학교 운영비로 사용한다.”

– 학교에 바치는 돈은 얼마인가?

“아들과 딸이 고등중학교에 다녔는데 매일 500원 이상씩 쥐어 보내야 한다. 둘이 학교에 내는 돈이 한달에 2만원이 넘는다. 선생님들 월급날이라고 돈을 가져가고, 혁명사적 연구실을 새롭게 단장한다고 돈을 가져간다. 거기에다가 무슨 국가 사업이 있으면 인민반에도 분담금을 할당하고 각 학교마다 분담금을 할당하니까 또 돈을 가져가야 한다.”

– 그럼 학용품이나 교과서는 학교에서 나누어 주나?

“학용품도 모두 각자 사야 한다. 교과서도 다 돈을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학기에 17과목이 있다 하면, 17과목에 대한 교과서 값을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다 걷어 간다. 그런데 정작 나누어 주는 책은 4~5과목 밖에 안된다. 국가에 종이 사정이 좋지 않다며 걷어간 돈 만큼 책을 공급하지 않는다.”

외부지원 식량 받아본 적 없어

– 외국에서 보내준 지원식량을 받아본 적이 있나?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외국에서 식량지원이 오면 우선 군대, 당기관, 검찰, 보위부가 가져 간다. 그리고 각 지역 양정사업소마다 조금씩 내려주는데 양정사업소에서는 장마당 가격보다 조금 싸게 판매를 한다.

장마당의 쌀값이 1kg에 900원이라면 양정사업소에는 800원에서 830원에 판다. 그것도 일반주민들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당 간부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만 판다. 일반 주민들에게는 차려지는 것이 없다.”

– 잘 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차이는 어떤가?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 생각에 지금 북한에는 부자가 20%, 그냥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사람들이 50%, 죽을 쒀 먹는 사람들이 20%, 죽도 못 먹고 굶어 죽게 생긴 사람이 10%는 되는 것 같다. 지금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

중국 창바이(長白) =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