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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상위계층에서 ‘달러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에서 상대적으로 잘 사는 ‘부자’들이 모든 화폐와 재산을 달러로 바꾸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의 상위계층 사이에 ‘체제붕괴’의 위험에 따른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렌(大連)시에 외화벌이 차 나온 북한 oo무역회사 직원 조원익(가명 • 33세) 씨는 기자가 남한 사람이라고 밝혔는데도 서슴없이 만나 술자리에 동행하였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그는 “조선(북한)도 이제 얼마 가지 못할 것 같다”면서 “요새 부자들은 달러를 모아 집안 깊숙이 감춰두고 있으며 자신도 이미 1만 달러 정도는 모아두었다”고 귀띔했다. 북한의 하급 간부들이 남한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밝히는 이러한 현상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2중 3중으로 제 살 길 확보
북한에서 ‘부자’란 대개 권력을 끼고 있는 사람들로,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가장 큰 반동은 간부들”이라고 할 정도로 중상층 간부들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많이 약화되어 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오히려 돈 벌 기회가 되면서 ‘신흥 부자’가 된 이들은 일본제 라디오를 통해 외부 방송을 듣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즐기면서 ‘나라 밖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계층이 되었다.
원래 어느 정도 동요하고 있던 이들은 이라크전쟁에서 막강 화력을 자랑하던 바그다드 공화국수비대가 제대로 반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너진 소식을 들으면서 북한의 군사력에 대해 전혀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북한인권법이 발효되면서 “이제 미국의 다음 공격 차례는 우리(북한)”라는 소문이 퍼져 최근 들어 더욱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3일 합법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을 방문한 평안북도 oo군 주민 김춘희(가명 • 38세) 씨에 따르면, 대남사업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최고위층(부부장급) 인사 A씨가 “김정일 정권은 이제 생명이 다한 것 같으니 스스로 살 길을 찾을 때”라고 말한 것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여권 발급을 위해 중앙권력기관에서 일하는 이모부의 도움을 받으러 찾아갔는데 “중국에 가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올 것이냐”고 물으면서 “갈 테면 가라, 이제 이 정권의 운명도 다 한 것 같다”고 자신의 먼 친척뻘 되는 A씨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A씨는 김씨의 이모부에게 “이제 미국으로 튈지, 한국에 붙을지, 중국으로 숨을지 하는 선택만이 남은 것 같다”면서 “어디로 가든 달러는 빛을 발하니 (가치도 없는 북한 돈을 모을 것이 아니라) 달러를 착실히 모으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A씨는 또한 “김정일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나중에 어떤 처지가 될지 모른다”면서 “이 정권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길어야 3년”이라고 했다고 한다. A씨는 남한에도 이름이 익히 알려진 대남사업기관의 간부다. 아무리 친지 간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최고위층에 속하는 인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다시 친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상위층 동요하면 김정일 체제 위태로워
이러한 동요현상을 경계한 탓인지 최근 북한 전역에는 중앙당에서 파견된 ‘비사(非사회주의)그루빠’가 더욱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초순 무산, 회령, 온성 등 함경북도 북부지역에도 ‘비사그루빠’가 내려와 집중 단속을 실시, 주로 부자들의 집을 가택수색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60-70명이 체포되어 도(道)보위부가 위치한 청진시로 압송, 조사 중이며 조만간 공개재판과 처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밀수를 하는 중국인 계철민(가명 • 43세) 씨는 “북한의 부자들은 대개 지방의 힘있는 사람들과 연계되어 재산을 유지해왔는데, 중앙당에서 내려온 ‘비사그루빠’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박씨는 “그래도 빠져 나갈 사람은 빠져나갔으며 부자 한 명이 없어지면 그 자리를 또 다른 부자가 채울 것”이라면서 “요새 북한 부자들은 조선돈에는 관심이 없고 달러에만 온통 눈독을 들인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를 유지해 온 ‘허리’ 역할을 했던 중상층 간부들, 이들과 연결된 부자들이 크게 동요하고, 이런 추세가 확산될 경우 민심이반 현상과 맞물려 김정일 정권의 체제유지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다롄(大連) = 권정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