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산골지역서 “왕의 지시 휴지조각” 유행어 확산

북한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지역에서 최근 ‘왕(김정은)의 지시가 여기까지 오면 휴지조각이 된다’는 용어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경지역을 통해 한국 등 외부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는 것과는 달리 당국의 지시문은 주민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비꼬는 것이다.

양강도 소식통은 21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요즘 주민들 속에서 ‘이미 휴지조각이 된 중앙(김정은) 지시가 또 내려왔다’는 말이 흔히 들린다”면서 “중앙의 지시가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전달되고 집행에서도 늦게 결속(완료)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혜산시를 벗어난 대홍단군과 백암군, 김정숙군, 김형직군, 김형권군의 경우는 열차나 소형버스로 문건들이 전달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어떤 지시문은 집행 날짜가 지나고 나서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거기다 하부 말단 단위에 도착한 지시문 등을 주민들을 모여 놓고 다시 재포치하는 식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소비된다고 한다. 때문에 주민들은 “쓸데없이 모여 놓고 지시전달을 하게끔 체계가 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식통은 “허세를 부리는 건 중앙이나 산골 간부나 판박이”라면서 “전화전달을 해도 될 것을 꼭 사람들을 모여 하다 보니 시간만 잡아먹게 되고 실천을 해야 하는 애매한 주민들만 급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어떤 경우는 도(道)의 간부가 직접 중앙에 가서 지시를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렇게 책자로 전달되는 지시들이 산골마을까지 전달되는데 최소 일주일이 걸리고 그보다 더 늦으면 보름이 걸리는 것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가뜩이나 중앙의 지시에 지쳐 있는 주민들은 ‘아예 전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그는 “평양의 지시문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휴지처럼 되지만 한국 소식은 손전화(핸드폰)나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전달된다”면서 “내부 지시는 속도가 느린 ‘거부기 통신’으로, 한국 등 외부 소식은 빠른 따스 통신으로 분류돼 불릴 정도”라고 말했다. 여기서 따스 통신은 북한에서 정보가 빠른 사람을 뜻한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국경지역에서 외부 소식보다 당의 지시가 더 늦게 전달되는 현상을 두고 일부 간부들조차도 ‘손전화가 있는 주민들이 많으면 뭐하냐’ ‘정작 지시들은 문서놀음에서 멈춰 있는데’라는 말로 고리타분한 중앙의 지시 체계를 비웃는다”고 덧붙였다.

강미진 기자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