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불능화중단 카드로 美에 고강도 압박

북한이 26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조치를 중단하고 원상복구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미루고 ‘완전하고 정확한’ 핵검증 이행계획 방안을 요구하는 미국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이 성명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나타내고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검증체계에 대한 거부 입장을 시사했다.

성명은 그러나 ‘핵시설 불능화 중단과 원상복구 고려’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라는 약속을 위반한 데 대한 대응조치라는 입장을 취하고 검증 요구와 직결시키지는 않았다.

성명은 우선 “미국이 우리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의정서가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속된 기일안에 우리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았다”며 “10.3합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테러지원국 해제에 목을 매고 있는 북한은 나름대로 불능화 조치 등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냉각탑 폭파쇼까지 했는데, 미국이 검증을 이유로 의회 통보기간 만료일인 지난 11일이 지나서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서 신고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합의한 것인데, 지금 검증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북한의 불만이 쌓였던 것 같다”며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의 내용은 예상됐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성명은 이어 검증 문제를 거론,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검증의정서는 현 단계 합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특히 ‘특별사찰’ 요구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의 ‘국제기준’에는 시료채취, 특별사찰, 미신고 시설 접근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한의 이날 성명은 특별사찰을 지목해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이라크에서처럼 제 마음대로 가택수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라고 반발했다.

그동안 북미간 검증 협상이 진행됐으나, 미국의 검증 체계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직접, 그리고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미간 검증 협상의 구체적인 진행 상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체계안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22일 뉴욕 접촉에서 미국측 제시한에 대한 회신으로, 미국측에 더 완화된 검증안을 요구한 셈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은 또 검증은 “전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최종단계에 가서 6자 모두 함께 받아야 할 의무”라며 주한미군에 대한 핵검증 요구 입장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우리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사찰하겠다는 것은..교전 일방인 우리만 무장해제시키려는 강도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영변 핵시설의 ‘원상복구 고려’라는 말로 압박하면서 “우리 해당 기관들의 강력한 요구”라고 밝혀 군부의 반발이 심하다는 점도 시사하려 했다.

그러나 북측의 강경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불능화 조치 총 11개중 8개 조치가 완료되는 등 불능화 조치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실제 원상복구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므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북한의 이번 성명은 지금까지 진전돼온 북미관계의 판을 깨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이유다.

부시 미 행정부는 북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최대 외교업적으로 내세우면서 임기내에 핵검증체계 수립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으로선 내달부터 미국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앞두고 불능화 조치의 중단을 통해 다급한 부시 행정부를 막판에 밀어붙여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임기 만료를 앞둔 부시행정부에 대해 북한의 핵 보유와 테러지원국 해제 중 양자택일 하라고 요구한 것인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이번 성명은 미국을 압박하는 정도이지 판을 깨자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은 “북한은 부시 대통령이 미국 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을 전환했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압박을 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이날 성명은 또 핵문제의 시급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북핵 문제를 미국 대선에서 이슈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낳는다.

북한식 사고로는 2006년 10월 핵실험을 통해 부시 미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이슈화된 중간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을 패배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는 만큼, 이번 대선에도 영향력을 미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