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부시 임기내 관계정상화 의욕

북한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임기내에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욕에 호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눈길을 끈다.

물론 ‘핵문제 해결’은 부시 행정부의 목표이고, 북한은 ‘조(북한).미 관계개선’을 목표로 앞세움으로써 강조점은 다르지만, 두 사안은 밀접하게 연계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힐 차관보는 “포괄적 해결의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라고 말한 데 비해 북한은 “‘핵무장 해제’를 선차적 목표로 내걸지 않고 두 나라의 관계개선에 의한 ‘포괄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말들은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22일 인터넷판에서 힐 차관보의 방북을 결산하는 평양발 기사에 들어있다.

조선신보가 “조선은 현상유지를 바라지 않고 있다”며 “목표 달성을 위한 합의 이행을 일부러 미루고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도 부시 행정부 임기내에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힐 차관보는 지난해 의회청문회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 미국은 한반도 ‘현상유지’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었다. 조선신보는 힐 차관보의 이러한 말에 맞장구친 것이다.

조선신보가 “북한이 합의 이행을 일부러 미루고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미국내 대북 강경.회의론의 핵심 논거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조선신보는 특히 “조선의 지향은 미국과의 대결전을 총결산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이 “그를 위한 사생결단이었다”고 밝혀 핵실험이 북미관계를 매듭지으려는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사실 북미 관계정상화는 북한 입장에서 미국의 오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김정일 체제를 지키며 국제무대에 정상국가로 진입하는 동시에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오랜 숙원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과 베트남 모두 대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경제개혁을 실현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는 체제 고수와 경제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북한의 최대 외교 과제이자 국가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신보가 “조선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교수립을 지행한다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정권으로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대목은 부시 행정부의 초조감을 지적한 것이지만, 동시에 북미관계 정상화를 서두르고 싶은 북한의 속내도 엿보인다.

조선신보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양자간 대결이 말 그대로 극한점”에 다달았었는데 “미국은 위협과 압력의 강화가 아니라 6자회담의 재개를 선택했다. 지금 미국은 종래와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의 변화를 어느 때보다 적극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초첨을 맞추고 북미관계도 그와 연계하고 있는 만큼, 핵문제 해결보다는 북미관계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는 북한과 미국간 이해관계가 어떻게 상호 절충을 통해 해결될지는 좀더 지켜봐야만 하는 대목이다.

조선신보는 “현재처럼 부시 정권이 상대방의 핵무장 해제를 선차적 목표로 내걸지 않고 두 나라의 관계개선에 의한 포괄적인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면 조선도 보조를 재빨리 맞추어 나가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혀 미국과 강조점을 달리 했다.

북한은 앞으로 6자회담의 틀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북미 양자회담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북미간 직접대화가 6자회담을 견인해나가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신보는 힐 차관보의 방북이 북한의 초청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그의 방북 의미를 북미간 직접 대화에 맞췄다.

지난 1월 베를린 북미 회동과 마찬가지로 힐 차관보의 방북도 북미간 직접대화의 연장선으로, 그것이 6자회담을 진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설명이다.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가 풀리자마자 힐 차관보를 전격 평양으로 초청한 것도 북미간 직접 대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 6자회담과 6자 외무장관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초청함으로써 북미간 양자협의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BDA 해결 과정과 힐 차관보의 방문을 통해 미국의 대북 관계개선 의지를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적정한 수준의 보상만 보장된다면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서 적극성을 가지고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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