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봉수교회 ‘교인’ 전원 대남사업 요원

▲ 봉수교회

봉수교회는 북한정권 수립 이후 최초로 세워진 교회다.

북한은 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며 국제교류 목적으로 1988년 9월 만경대구역 건국동(옛 봉수동)에 1,2층 규모의 450 좌석을 갖춘 봉수교회를 지었다.

건설비는 당시 북한 돈으로 약 50만원(당시 환률 환산 25만 달러)으로 “전국의 교인들과 해외의 기독교 단체와 교회에서 보내온 지원금으로 충당했다”고 조선그리스도연맹(조그련)은 주장했다. 조그련의 주장은 물론 허위다. 북한에 ‘전국의 교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그련의 주장은 국제사회에 ‘북한도 종교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선전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봉수교회는 담임목사와 부목사, 장로 8명, 권사 14명, 집사 5명에 신도수는 300명 정도였으나 최근 450석의 좌석이 모자라 교회 건물을 확장하여 새로 짓고 있다.

본래 예배당을 허물고 새로 짓는 예배당은 지상 1,2,3층에 1200석 규모로 남한의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측)가 40억 원을 지원하여 건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도 평당 180만원 정도면 고급호텔도 지을 수 있는데, 건축비가 적게 드는 북한에서 평당 300만원이 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외교부 근무보다 수입 좋은 봉수교회

필자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평양에서 지냈다. 당시 나는 사촌형의 소개로 홍인덕(가명 42살)이라는 사람을 소개 받았다. 그는 자신을 외교부 참사(책임지도원)로 외교부 본부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대동강구역 문수동의 고급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많이 도와주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1년 정도 함께 지냈다.

그와 나이 차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술도 같이 마시며 많이 친해졌으며 나에게 지방실정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하였다. 그는 평양 태생으로 평양과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방실정을 너무도 몰랐다.

그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1970년대에 북한의 정보원 양성기관인 인민군 보위대학 프랑스어과를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국가보위부 외교부 담당으로 파견되어 본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당시 2호국(현 김정일 호위총국) 사령관 한씨의 맏딸과 결혼했다. 결혼 당시 김정일의 화환과 선물시계 등을 받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그는 그후 프랑스 주재 북한대표부 부대표 자격으로 파견되어 6년간 파리에서 살았다.

귀국 후 그는 다시 외교부 본부에서 근무했다. 당시 그는 주로 외국의 국가수반이 올 때 영접을 맡은 귀빈 영접국을 담당했다. 외교부에서는 그를 홍참사로 불렀다. 그의 집 유리벽장 안에는 외국사람들에게 받은 선물이 많았다.

그는 나에게 선물들을 소개하면서 관리는 자신이 하지만 국가에 등록되어 있다고 섭섭한 표정을 짓곤 했다. 97년 2월 그는 중앙당으로부터 봉수교회 참사로 파견받았다.

나는 그가 본부에서 무역기관으로 옮긴 것으로 짐작했다. 그는 평소에 무역기관으로 자리를 옮길 의향을 내비쳤다. 당시 나는 봉수교회가 무역기관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홍참사가 봉수교회로 옮긴 뒤 그가 바꿈돈(달러와 교환한 돈표)을 외교부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썼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봉수교회가 대단히 큰 무역회사로 알았고 홍참사에게 거기에 취직을 부탁하기도 했다.

나는 덕분에 고려호텔 주변의 외화식당에 그와 자주 갔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일본식 회(북한식으로 ‘사시미’)를 북한산 창광술을 곁들여 먹어 보았다. 그는 가끔씩 용돈으로 100원 정도의 바꿈돈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가 봉수교회에서 무엇을 담당했는지는 모른다. 그는 벤츠를 타고 출퇴근을 했으며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새벽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낮에 쉴 때도 많았다.

홍참사는 국가보위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봉수교회에 파견되어 근무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외교부 본부에 있을 때보다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외화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국 입국 후에야 나는 홍참사가 왜 봉수교회에서 근무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북한당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남사업의 일선이기에 가장 신임하는 정보원을 파견한 것이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평양에 가서 봉수교회에서 예배나 종교행사를 하는 것을 TV를 통해 보았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봉수교회의 ‘교인’이나 임직원들이 북한의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선전부와 국가보위부 보위원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교시나 말씀이 성경말씀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봉수교회 ‘교인’들은 전원 통일전선부, 보위부의 파견직원들이며 여자들은 그들의 아내들이다. 봉수교회에 교인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