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보천보전투 69돌 “역사적 사변”

고(故) 김일성 주석이 유격대를 이끌고 함경북도 갑산군 보천보 일대를 습격했다는 보천보전투(1937.6.4)가 올해로 69돌을 맞았다.

북한 언론매체들은 4일 “수령님(김 주석)이 조직.진행한 보천보전투는 당시 일제의 폭압 밑에 신음하던 우리 인민에게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라며 그 의미를 크게 강조했다.

김 주석은 1937년 3월29일 중국 무송현 서강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 국내진공작전을 제안하면서 보천보전투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보천보전투는 대포도, 비행기도, 탱크도 없이 진행한 자그마한 싸움이었지만 유격전의 요구를 최상의 수준에서 구현한 전투였다”며 “(이를 통해) 민족적 독립과 자주권을 부활시키려는 혁명적 의지와 불굴의 투쟁정신을 내외에 널리 보여줬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930년대 후반기는 민족의 명맥이 영원히 끊기느냐 마느냐 하는 엄혹한 시련의 시기였다”면서 김 주석이 당일 전투현장 100m 안팎에서 유격대를 지휘해 경찰관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국 등을 습격.소탕했다”고 전했다.

당시 유격대는 ‘조선민중에게 알린다’, ‘조국광복회 10대 강령’ 등 포고문과 격문을 살포하고 물자를 노획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경 7명이 죽었다. 언론은 이 전투를 크게 보도해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우리민족끼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보천보를 들이쳤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중앙일보 사장을 하던 애국지사 려운형 선생은 너무 기뻐 서울에서 보천보까지 차를 타고 달려가 직접 현장을 목격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또 “인민에 신심(信心)을 안겨준 데 보천보전투의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서 “역사와 현실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영도자에 의해서만 강한 민족적 자존심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한에서는 김 주석이 실제 보천보전투를 이끌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 전투를 김 주석의 항일 경력으로 인정하는 추세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