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보위부장 이진수 죽음, 아직 안개속

▲ 보위부 정치대학에 대해 설명하는 이진수

김병하가 숙청된 후 국가정치보위부는 중앙당의 직접적인 통제권 안에 들어갔다. 정치보위부가 중앙당의 검열을 받은 것은 보위기관이 당의 지시를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기관의 독자성을 주장한 데 있었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보위부의 명칭도 ‘정치보위부’에서 ‘정치’를 빼고 ‘국가보위부’로 불리도록 조치되었다. 84년 김병하를 이어 이진수가 국가보위부장에 임명됐다.

1921년생인 이진수는 해방 직후 보안서원(경찰)으로 발탁되어 프롤레타리아 독재기관에 발을 들여놓았다. 남포 보안간부훈련소를 졸업하고 북조선인민위원회 내무국이 조직된 후에는 김일성을 호위하는 경위대원을 지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8.15 해방 후 항일빨치산 출신들은 북한정계에 대거 진출했지만, 나이 어린 보안서원 출신들은 혁명의 2세로 70~80년대 북한권력계층의 중심축을 이루었다. 1957년 9월 최고검찰소 부소장에 오른 이진수는 당의 계급노선을 관철하고, 적대세력들에게 타격을 가하며 승진의 길을 걸었다.

73년 안전부와 보위부가 갈라지면서 김병하가 정치보위부장으로 옮긴 뒤 이진수는 사회안전부장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김병하의 전철을 따라 직위를 계승한 동지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다.

해외반탐, 국경봉쇄에 주력

국가보위부장으로 취임한 이진수는 먼저 해외반탐(反探)과 국경봉쇄를 강화했다. 제2국(해외반탐국)은 모두 4과로 구성, 1과는 유럽, 2과는 북미, 3과는 총괄, 4과는 동아시아를 담당한다.

이로서 북한의 해외공작파트는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통일전선부, 작전부, 대외연락부와 보위부 해외반탐국이 맡게 되었다. 해외반탐국이 조직되면서 일본, 중국, 홍콩, 마카오 등지에 해외반탐 조직이 꾸려지고, 그들은 외교대표부와 대사관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비밀요원들이 증원되고, 무역과 해외업무의 신분을 가진 연락원들과 공작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미국, 일본, 남한 등 해외에 친척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을 빠짐없이 장악, 감시하고 북한을 방문하는 친척들과 해외로 나가는 주민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중국의 공안부, 러시아 안전부와 맺은 협정에 따라 북-중, 북-러 국경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 처리와 특수 도주자에 대해서는 보위부원들을 직접 파견, 체포할 수 있도록 상대국 공안기관과의 협조체계도 보강했다.

이진수의 가장 큰 공적은 국경과 항만, 공항세관 단속제도를 개혁한 것이다. 과거 사회안전부에서 맡았던 국경경비임무와 국경통행검사 임무를 보위부에서 맡도록 했다. 이로써 안전부 정복을 입고 있던 국경경비총국과 국경통행검사부대들은 군복으로 바꾸어 입고, 해당 보위부 산하에 영입되었다.

훗날 이진수가 죽고 보위부의 권능이 나날이 약화되자, 국경통행검사소와 국경경비일꾼들은 안전부 정복을 벗긴 그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가보위부는 반체제 행위자 및 對간첩수사, 정치범수용소 관리, 공항, 항만 등의 출입국 통제 및 수출입품 검사와 밀수 단속,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 호위사령부와 협조 아래 김일성 김정일을 보위하는 호위사업(1호위부)까지 맡는 종합적인 정보기관으로 면모를 쇄신했다.

이진수 사인은 아직 묘연, 김정일 지시로 장례식 성대히

1987년 8월 황해남도 어느 마을에 지도사업을 내려갔던 이진수는 의문의 시체로 발견됐다. 뜻밖의 사고였다. 그의 사망원인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가스 질식사, 교통사고설 등등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밤나무 가스나 석탄가스로 질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남한에는 연탄가스로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더운 여름인 8월에 석탄이나 밤나무를 땔 리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시했지만, 사인(死因)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진수뿐 아니라 북한의 고위인사들 중 사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는 많았다. 사람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은 이진수가 생전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사망하자 김정일은 대장의 군복을 입혀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게 했고, 그의 생애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생하는 삶>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진수의 죽음은 북한 정보공작의 총본산인 국가보위부의 실체를 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가안전보위부 연혁
1945. 11. 19
보위기관 창립절, (김일성 남포시 보안간부훈련소 현지지도)
1949. 6
내무성 정치보위국
1951. 3
사회안전국 창설, (내무성과 별개)
1972. 12
사회안전부 정치보위국
1973. 2. 15
김일성 사회안전부에서 정치보위부로 독립 지시
1973. 3
국가정치보위부 독립(초대 정치보위부장: 김병하)
1982. 4
정치보위부를 국가보위부로 개칭(국가보위부장: 이진수)
1992. 11.12
국가안전보위부로 개칭(제 1부부장: 김영룡)

백명규/ 前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근무(2004년 입국,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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