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버스·컴퓨터’ 구입하라고 현금까지 대주나

정부는 10일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 실무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화상 상봉을 위한 장비 구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이 요구한 40만 달러(약 3억8000만원)를 현금으로 직접 지원키로 했다.

정부가 현금 지원을 결정한 이유는 북한이 상봉행사를 하려면 컴퓨터와 대형 모니터를 비롯한 화상 장비와 생사확인 작업에 필요한 버스 10대, 승용차 6대 등이 필요하다고 알려와 이에 대한 구입비용을 주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현금 40만 달러 외에 평양에 화상상봉센터를 짓는 데 필요하다며 굴착기·화물차 등 장비와 건축자재·냉난방기·케이블 등 350만 달러(약 31억원) 상당의 지원도 요구했다. 정부는 이를 수용해 3월 말부터 지원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명분이야 어찌됐든 이번 지원은 정부가 그동안 유지해온 ‘현금지원 불가’ 원칙을 스스로 깬 것이다. 이번 지원으로 향후 북한의 추가적인 현금 지원 요구와 민간단체들의 대북 현금지원 추진을 막아설 명분이 없어졌다.

정부는 “구체적 사용내역을 우리 측에 통보하고 화상상봉센터 현장 방문을 보장하기로 돼 있어 현금이 다른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북한에 건네진 현금의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금 지원 요구 목록에는 ‘버스 10대와 승용차 6대’도 포함돼있다. 생사확인 작업에 필요하다지만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운송수단까지 손을 내미는 염치 없음은 둘째치고, 정부는 북측이 버스 구입비용을 일부 빼돌린다면 이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또 만약에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환수할 방법이 있는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통해 들어가는 현금이 북한 핵개발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전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상태에서 정부의 현금지원은 오히려 이러한 의혹에 부채질을 하는 셈이다.

우리 정부가 현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인도적 사업’이라는 명분이지만, 버스나 컴퓨터 구입이 직접적인 인도적 사업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최근 유엔에서 논란이 된 유엔개발기구의 대북 인도 사업 지원액 전용 문제도 직접 구호에 쓰여야 할 돈이 부대비용 항목으로 책정된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특히 통일부는 화상상봉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LCD 모니터와 컴퓨터 등 각종 장비가 미국 국내 법인수출관리규정(EAR)에 저촉돼 직접 지원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 등지에서 현금으로 구입하라”며 현금을 지급키로 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과의 마찰도 예상된다.

북한에 대한 물자 지원은 미국의 EAR 등 국제사회의 전략물자 통제규정에 따라야 한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우리 기업들도 미 상무부의 수출허가와 통일부의 대북 반출승인을 엄격하게 적용받고 있다. 때문에 시간이 좀 소요되더라도 이러한 규정을 지켜 현물로 직접 지원할 수 있음에도 “중국 등에서 구입하라”며 우리 스스로 국제룰을 어긴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마찰도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이산가족 화상 상봉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4차례를 실시해 총 279가족 1,876명의 가족과 친척이 생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화상 상봉에 대해 실제 대다수 이산가족들은 탐탁치 않아하고 있다.

이유는 반세기를 떨어져 살아온 이산가족들에게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얼굴 한 번 쓰다듬어 볼 수 없는 화상상봉 행사는 말 그대로 ‘가혹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대면 상봉 횟수와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누구도 바라지 않는 화상상봉에 정력을 쏟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산가족들은 정책적으로 대면 상봉에 초점을 맞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대면상봉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지 굳이 화상상봉을 고집하는 북측에 따라갈 필요가 없다. 화상상봉은 대면상봉을 회피하는 실패한 정책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정부가 실패한 정책에 현금까지 보태주면서 북한의 뒤를 봐줄 경우 정부의 ‘퍼주기’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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