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배급 vs 자력갱생계급 간 전쟁 시작”

▲ 4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주최로 ‘북한 식량난의 진실과 해법 : 대북 식량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데일리NK

“이번 북한 식량난의 특징은 ‘시장의 패닉(Panic)’이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사장 유세희)가 4일 오후 서울 4·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북한 식량난의 진실과 해법:대북 식량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학계와 NGO의 대북 전문가들은 우선 북한의 식량난 원인이 체제 모순에서 발생했다는 데 입을 모았다.

또한 북한이 만성적 빈곤 상태이긴 하지만 이를 대량아사와 결부 짓는 것은 현실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대북지원 국가들이 긴급구호성 지원보다는 북한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기됐다.

북한 내부 저널리스트들이 펴내는 잡지 ‘림진강’의 발행인 이사마루 지로 일본 오사카 아시아프레스 대표는 “4월에 접어들면서 북한 식량 가격의 급등은 비정상적인 특징을 보였고, 국제가격의 상승이나 작년의 수해 등 외부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양상을 보였다”면서 “이번 식량난의 주된 원인은 ‘시장 패닉’을 일으킨 내부의 혼란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시마루 대표는 북한 내부 취재원들이 보고하는 쌀 가격을 바탕으로 북한의 식량사정에 관해 조사한 결과 “북한 식량 사정은 90년대 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부 단체가 주장하듯이 몇 십만 명에 달하는 아사자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넒은 지역에서 조금씩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선군정치가 수정돼야 빈곤 극복…北 자생력 키워줘야”

그는 “최근의 쌀값 상승은 올해 초 북한의 식량 부족을 예상한 도매 장사꾼들이 시장의 공급량을 (의도적으로) 줄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도매 장사꾼들은 대체적으로 국가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로 이들이 장마당 유통을 간섭, 쌀 거래로 인한 이익을 독점하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강철환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은 이제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권력층으로 구성된 ‘배급제 계급’, 시장을 통해 생존능력을 터득한 ‘자력갱생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며 “최근 북한에서 식량 가격이 오른 것은 배급을 받던 계층에서 한국의 정권이 바뀌자 불안감이 높아지며 위기감이 부풀려 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급제 계급은 당 간부와 군수공업 종사자들을 포함해 500만 정도로 추산되며, 이는 북한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현재 북한 내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30%와 나머지 70% 계급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4월말~5월초에 걸쳐 북한의 식량 가격이 하루 새 1천 원 이상의 급락을 보인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북한 식량 상황 조사에 대한 정확성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 왼쪽부터 이사마루 지로 일본 오사카 아시아프레스 대표,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데일리NK

이시마루 대표는 이에 대해 “조사 결과가 극단적으로 나올 때는 북한 내 취재원을 통해 재확인하고 있다”며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북한 내 식량가격을 조사하는 다른 단체들도 대체로 비슷한 결과를 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식량난의 근본원인’에 대해 발제한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 이후 북한의 인도적 상황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기근을 동반하지 않는 만성적인 빈곤상태”라고 정의했다.

“‘김정일, 핵개발 위해 수백만 명 굶겨 죽였다’는 말 들어”

정 연구위원은 “대량아사설의 오류는 현실적으로 근거가 희박한 ‘기근’의 발생가능성을 과장함으로써, 언제나 문제를 단기적인 긴급구호성 지원 문제로 몰아갔다는 점”이라며 “북한이 당면한 인도적 상황을 만성적 빈곤문제로 규정했을 때 근본적인 원인은 선군정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위 관리로부터 김정일이 직접 ‘핵개발을 위해 수백만 명을 굶겨 죽였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선군정치와 경제발전은 양립 불가능한데 경제발전을 우선한다면 선군은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북한이 만성적 기근을 해소하려면 스스로 식량획득권리를 확대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며 “북한에 구호식량을 제공하고 있는 나라들이 북한에 만성적 기근에서 탈출하는 경제정책을 시행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구체적으로 “한국정부는 모든 대북식량지원국 또는 단체와 협의체를 결성해 대북식량지원의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토론자로 나선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구상이고 슬로건일 뿐이지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며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언제까지, 어느 규모로 할 것인지에 대한 상도 그려져 있지 않다. 북한 식량난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자생력을 키울 수 있게 우리 정부의 정책이 하루빨리 수립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