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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새해 초부터 올해가 대선의 해가 아니랄까봐 남북의 지도자라는 사람들부터 그 수하들에 이르기까지 ‘말이 되지 않는 표현들(語不成說)’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월 9일 개헌론으로 다시 정계의 중심부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는 작년 11월 베트남의 APEC에서 아베 일본 수상과 만나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합의 개칭하는 것은 어떠한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하였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청와대의 용어 해석자들은 “대통령의 발언은 공식제안이 아니었다”고 회담기록까지 공개했다. 한심한 변명이다. 원래 ‘제안’이라는 말의 뜻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제시하는 것”이고 그 자리가 정상회담과 같은 공식석상이라면 당연히 “공식 제안”이 된다. 그럼 양국 정상이 아이디어 회의라도 따로 했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그 다음의 말 비틀기는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조건 없는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에 관한 어록들로 나타났다. 불과 2주 전 노대통령은 민주평통회의에서 대북지원은 “인도주의 원칙, 또 무슨 상호주의 원칙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겠다” 즉 “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하냐”를 따지는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천명한 것과는 바로 원칙에서부터 엇갈리고 있다.
대통령은 대북지원이 일방적 ‘퍼주기’라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장관은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유엔제재와 충돌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퍼주기 위해 이번에는 인도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쌀 지원이 차관형식임을 빌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분배투명성을 넘어가려고 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라는 점이다. 차관형식의 장점은 ‘외상거래’이지만 김정일이 사간 것이니 어디다 쓰든 김정일 마음이고, 게다가 외상이지만 거래는 거래이니 남북경제교류의 폭발적 양적 팽창에도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이다.
참여정부 대북정책 봉숭아 학당 수준
재미있는 것은 통일부의 사이버 통일교육 홈페이지에 걸려있는 “2000년 통일교육 기본 지침서”의 포용정책 3대 원칙과 6개 기조 중 후자의 하나로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남북간 상호이익의 도모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려면 일방적으로 주거나 일방적으로 받으려고만 해서는 안 되며, 서로 간에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쯤 되면 대북정책에 관한 한 통일부는 ‘봉숭아 학당’ 수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그러나 뭐라 해도 말장난의 정상급 매니아는 북한 정권이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선전략 기본지침을 내세웠다.: “지금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동보수세력은 외세를 등에 업고 매국반역적인 기도와 재집권 야망을 실현해 보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고 있다.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조국통일을 바라는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보수 대련합을 실현하여 올해의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매국적인 친미반동보수세력을 결정적으로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 나가야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작년 조평통의 한나라당 집권시 전쟁운운 발언과 이번 신년공동사설 건에 대하여 “희한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북한의 대선 개입 내정간섭에 대해 한마디도 사과나 해명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와 야의 대결이 아닌 야당과 북한과 여당의 합작과의 대결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물론 위에 인용한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내용적으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필자는 박근혜 전 대표의 내정간섭 비판론에 대해서는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미 남한의 친북단체들이 ‘반보수 대연합’을 결성하여 공개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대선지침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마당에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은 너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말장난을 비판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그 부당함을 지적하여 나의 게임 밖으로 물리치는 것, 둘째, 그 전제 조건들을 밝혀 나의 게임 안으로 끌어들인 후 ‘바보’로 만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북, 한나라당 후보 당선되면 전쟁도 불사 의지?
굳이 말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의 대응은 물리치는 방식이지만, 친북좌파 정권이나 단체들이 이런 비판에 눈 깜짝할 리도 없고, 내정간섭 비판론에 공감하는 국민들은, 아마도 이미 친북좌파정권의 종식을 바라는 사람들일 것이다. 즉 공감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필자는 북한의 상습화된 ‘내정간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이열치열(以熱治熱) 방식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물론 실행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신년벽두부터 무겁고 듣기 괴로운 남북의 말장난에 지친 독자들에게 최소한 약간의 웃음거리라도 선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필자의 한 선배가 가르쳐준 ‘작업방식’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꼭 사귀고 싶은 상대가 있을 경우에는 “여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면 다방에 가서 할까요?”라고 질문하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상대방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 은연중 전제로 깔려 있고, 이 점을 간과한 상대방이 공개된 장소보다는 그나마 남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이 낫다고 생각하면 이미 작업은 반쯤 성공했다는 것이다. 해서 경험이 많거나 머리 회전이 빠른 상대방이라면 이런 수작에 대하여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라고 딱 잘라 말할 것이다.
북한의 작년 조평통의 발언과 이번 신년공동사설의 내용을 보면 남한 국민이 ‘반보수 대연합’을 결성, 단일 후보를 추대하여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시키면 바로 그 당선자와는 거래를 하고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이 되면 거래는커녕 전쟁도 불사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후보든 야당후보든 그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든 그는 헌법수호의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귀속될 대통령을 선출할 선거를 인정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을 인정하지 않고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헌법에는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의 영토이며(제3조),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못 박고 있다(제4조).
만일 북한이 이러한 한국의 헌법과 ‘남조선 괴뢰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이 ‘괴뢰정부’의 수반과의 관계가 필요하다면 우리 헌법과 그 헌법에 기반한 대통령 선거 자체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다만 남한 측을 ‘현실적으로’ 거래의 상대자로만 인정하겠다고 나와야 논리적으로 정상이다.
반보수대연합 소동은 한국 헌법체제 인정하는 꼴
남한정부의 수반을 뽑는 과정과 결과를 인정하는 것과 현실적 거래의 필요성으로 인해 인정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이 남한의 대통령선거의 절차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해서만 선호를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앞의 신년공동사설에서 언급한 ‘조국통일’이 한반도 전체를 자유민주주의 체제화하는 ‘흡수통일’일 리가 없다면 그것은 연방제일 것이고,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못박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과는 명백히 모순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반보수 대연합’의 후보자가 설사 ‘연방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다 하여도 그런 개헌이 헌법학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개헌 절차를 거쳐 확정, 효력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반보수 대연합’ 후보의 미래를 생각하여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다 하더라도 선거의 법적 기반인 대한민국의 현재 헌법을 인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혹자는 북한정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남한정권의 수립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시각의 배경에는 그들의 이러한 지지와 반대가 ‘내정간섭’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서로 간에 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1992년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서문에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하더라도 합의서 제1조에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함”과 동시에 제2조에서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였다.
평양 공동사설 관철 10만 군중대회는 한국 헌법체제 구성원 표방한 것
뒤집어 말해 내부문제에 간섭하는 측은 상대방을 특수관계로도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북은 외국과의 관계도 또 특수 관계도 아니며, 남은 가능성은 그냥 남북이 하나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개입한다는 것은 바로 그 선거의 법적 근거인 대한민국 헌법을 인정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선거에 개입하려면 김정일 집단이든 조평통이든 북한인민이든 형식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체계 내로 들어와야 하며, 개입하였다면 이미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보수 대연합’을 결성하여 야당인 한나라당을 “매장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김근태 열우당 의장이 야당을 수구냉전, 반통일․반평화세력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최소한 법적으로 즉 형식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것과 흡사하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내정간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김정일 정권에게 차라리 올해의 대통령선거에 더 이상 비겁하게 수하의 친북단체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당당하게 개입하여 “반보수 대연합”의 일원으로, 예를 들어 선거참모를 보낸다거나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참가하라고 권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김정일 정권도 대한민국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며, 이럴 경우 김정일 정권 스스로 더 이상 합법성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따라서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아예 김정일의 대리자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참가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김정일이 KAL기 폭파와 같은 국제테러로 인해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는 지는 전문가들이 판단할 사항이다.)
게다가 보도에 의하면 10만 명의 북한주민이 평양에 모여 군중대회를 열고 신년공동사설 실천을 결의하였다니, 김정일 집단뿐 아니라 북한인민들도 대한민국의 일원임을 논리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지 생각해 보라!
한국 국민 10만 명이 시청 앞에 모여 영국의 선거에 보수당 혹은 노동당을 지지한다고 주먹을 흔들며 결의를 한다면 이는 내정간섭이 아니라면, 한국 국민 스스로 영국 국민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차이가 있다면 영국정부는 이럴 경우 한국 국민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북한인민이 대한민국 국민임은 이미 헌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북 인권문제 개입 합법성 여는 것
그렇다면 북한인민들도 이번 대통령선거에 투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선거운동과 선거방송 등을 남한지역에 국한시키지 말고 북한지역에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색안경 낀 김정일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반보수 대연합”의 지지자가 엄청 증가하는 것이니 이 어찌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
강성대국, 주체의 나라에서 북한인민들은 흑백투표가 아니더라도 선거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자신의 진정한 견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선거가 합법적으로 인정되려면 공정해야 하고, 공정하려면 공정한 선거감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정한 선거감시를 위해서는…
아마 이쯤 되면 독자들은 필자보고 더 이상 새해부터 백일몽을 꾸지 말고 냉수나 한 대접 마시라고 충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백일몽’은 순전히 논리적 추론의 결과일 뿐이다. 다만 앞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실행이 불가능하리라는 점은 인정한다. 중요한 점은 이 추론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
첫째, 친북좌파들은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하여 한국정부의 개입을 더 이상 ‘내정간섭’이라는 명목으로 반대할 수가 없다. 또 한국정부는 북한에서 자의적으로 자행되는 공개처형, 고문, 감금, 강제수용소의 설치와 이와 관련된 범죄행위에 대하여 반드시 단죄할 것을 천명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며, 알려진 범죄에 대하여는 지금이라도 궐석재판을 열어야 한다. 북한은 한국국민의 절반 이상이 지지하는 정당을 매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에 북한의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둘째, 한국정부는 북한의 수령독재정권(봉건세습파시스트정권)의 창출과정에 대하여 비판은 하여도, 그들의 게임 규칙을 절대로 인정해서도 안 되고 게임에 공개적으로 개입해서도 안 된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그들과의 대화가 가능할 뿐이다. 분단 독일 시에 서독의 콜 수상이 동독의 호네커 공산당 제1서기와 정상회담을 했을 때에도 이런 입장에서였다.
셋째, 피차 ‘내정간섭’이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돌발적인 통일상황에 대처하는 데에 임기응작의 유연성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며, 차라리 내정간섭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들을 남북한이 가능하면 많이 하는 것도 점진적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북한에 식량과 비료원조를 이북5도청 산하 미수복 지역의 도지사들이 주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