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일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 리졸브’ 기간(9~20일)에 동해상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한국 민간 항공기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위협, 긴장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성명에서 9일 시작되는 한·미 합동 ‘키 리졸브’ 군사훈련을 거론하면서 “군사연습 기간 우리 측 영공과 그 주변, 특히 우리 동해상 영공 주변을 통과하는 남조선 민용 항공기들의 항공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조평통은 “(키 리졸브는)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으로 벌이는 것으로 이는 공화국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며 “무분별한 북침 전쟁연습 책동으로 조선반도에서 그 어떤 군사적 충돌사태가 벌어질 지 알 수 없게 됐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지난 1월17일 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서 ‘남북관계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주장한 이래 NLL 위협 등 계속해서 긴장국면을 높여 왔다. 지난달 24일엔 ‘대포동 2호’ 미사일인 ‘광명성2호’ 발사 준비를 사전 예고했다.
북한이 서해NLL과 휴전선에서 충돌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민간 항공기의 안전마저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해오면서 북한의 도발 대상이 육해공 전면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北, ‘키 리졸브’에 위협…강한 불만 표출=북한은 그 동안 ‘키 리졸브’ 훈련에 대해 ‘북침 전쟁연습 책동’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해 왔다.
북한은 최근 대내외 매체와 유엔사와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때문에 이번 ‘동해 민간 항공기 위협 카드’도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상당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북한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직접적인 대응으로 ‘민간 항공기 위협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군 당국에선 6일 재개될 유엔사와의 장성급 회담을 앞두고 회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6일 판문점에서 열릴 북한과 유엔사 간의 장성급 회담에 맞춘 기선 잡기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날 개최될 회담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의 대남 압박과 비방 강도가 일회성이어야 하는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듯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서도 “‘키 리졸브’ 훈련을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 만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도 “키 리졸브 훈련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6일 개최될 유엔사와의 장성급 회담의 분위기와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행보”라면서 “더불어 남한에 불만을 표출하는 연속선상의 위협”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북한의 이번 조치가 ‘키 리졸브’ 기간 이후에도 지속되면 전면적인 남북관계 중단을 단계적으로 높여 개성공단 중단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 리졸브 훈련 기간 대포동2호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항공기에 대해서만 ‘위협’하고 미사일의 해상 표적이 될 수 있는 ‘선박’ 등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 발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유 교수는 “미사일 발사 수순이라는 분석도 배제할 순 없지만 북측이 영해 내 자국 선박 등에 대한 조치도 발표해야 하는데 아직 그 같은 조치가 없는 것을 볼 때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나름의 항의와 대비라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 리졸브’는 방어용…“협약 위반 강한 유감 표명해야”=전문가들은 북측의 이 같은 위협에 한미 양국은 일단 민간 항공기들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고, ‘키 리졸브’가 연례적인 방어 연습이며 이미 북한에 사전 통보했음을 강조, 강한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도 5일 북한이 동해상을 지나는 남한 민항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위협한 것과 관련, 북한의 대남위협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도발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훈련기간 북측 영공 침범은 없다고 단언했다.
우리 정부는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제 항공규범에 의해 운행되고 있는 민간 항공기의 정상적인 운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국제규범에 위배됨은 물론, 비인도적인 처사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더불어 정부는 국적 항공사와 협의를 통해 우리의 민간 항공기 운항의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현재 북한의 동해상 영공을 통과해 인천으로 들어오는 국내외 항공편은 하루 29편 정도이다. 먼저 국적 항공기의 경우 미국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12편과 러시아에서 오는 4편 등 16편이 북한 동해상 영공을 통과한다.
북한의 발표 직후 정부와 협의를 거친 대한항공은 북한 영공을 지나는 모든 항공기를 안전한 항로로 우회하도록 조치했다. 아시아나 항공 측도 국토해양부에서 노선을 변경하라는 지침이 나오면 일본 영공을 통과하도록 할 방침이다.
남북은 1997년 10월 비행정보구역(FIR) 통과 및 항공로 신설에 관한 항공기 관제 이양 협정을 체결, 2000년 6월 서해, 2002년 7월 동해 등 단축 임시항공로를 개설해 북한 영공을 통과해 운항해왔다. 하지만 최근 북측은 일방적으로 남한과의 정치·군사적 합의 무효화를 선언한 바 있다.
항공사들은 북한 동해상의 상공을 통과하면서 한 편당 약 135만원의 영공 사용료를 낸다. 항공사들이 북한에 영공 사용료를 내면서까지 북한 상공을 통과하는 것은 연료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우리는 ‘키 리졸브’ 훈련이 방어용이라는 점을 반복·강조하면서 동해상 운항 항공기에 대한 북측의 위해가 있을 시에는 선전포고라고 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며 “북한이 국제적 협약을 위반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북한이 제한조치를 예고한 이상 우발적 사건 발생에 대한 안전에 대해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다”며 “훈련기간 우회하는 항로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훈련일정을 사전에 통보하고 준수할 것을 북측에 약속했기 때문에 북측의 지나친 긴장조성에 대해 장성급회담 등에서 유감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