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일반연설에서 연설하고 있다. /영상=UN 홈페이지
북한의 고위 관계자들이 동시에 기존의 동시행동·단계적 비핵화 원칙을 언급하면서 그 의도가 주목된다. 북미가 2차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한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오스트리아 빈 실무협상 등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를 직접적으로 요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먼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북한은) 핵시험(실험)과 대륙간 탄도 로케트(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 시험장을 투명성 있게 폐기했다”며 “(북한은)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데 대하여 확약한 것과 같은 중대한 선의의 조치들을 먼저 취했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그러나 미국은 조선반도(한반도) 평화체제의 결핍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가셔줄 대신 ‘선 비핵화’만을 주장하면서 그를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 압박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다“며 “심지어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태형철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고등교육상도 같은 날 뉴욕 맨해튼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2018 글로벌 평화포럼'(2018 Global Peace Forum on Korea·GPFK)에 보낸 기조연설문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며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그 같은 법적·제도적 메커니즘을 제공하기 위한 첫 단계이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려는 압박성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이 같은 인식이 북한 당국의 공식적 입장이라면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용기와 그가 취한 조처들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대북제재는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제 새 시대의 새벽이 밝았다”고 밝힘과 동시에 “(대북제재 관련) 안보리 결의안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실현할 때까지 반드시 힘차게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진행될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예고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 당국이 실무자의 입을 통해 판을 깨뜨리지는 않으면서도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