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검증 논의를 위한 지난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에서 ‘분리검증안’을 집중 협의하고 북한은 미국의 ‘미 신고지역 사찰’ 검증 요구에 추가적 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 방북시 북한이 ‘미·북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는 북한이 기존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7일 “북한이 많은 얘기를 했지만 최근 언론에 등장한 미북 군사회담 개최 등을 정식 요구하지는 않았다”면서 “(미신고 지역 사찰이라는) ‘추가적인 요구에 따른 추가적인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외교소식통도 “북한 외무성 측은 검증문제와 관련한 미국측 요구를 수용하는 대가로 추가보상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추가적 보상을 요구하는 이유로, 미국이 검증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일부 시설이 군사시설인 만큼 검증에 앞서 준비 조치의 일환으로 시설 이전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9년과 2000년에도 평안북도 금창리 핵의혹 시설에 대한 미국의 조사 요구에 대해 군사시설인 점을 들어 간접적인 이전 보상비용으로 60만t의 식량지원을 요구해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논란이 된 ‘미·북 고위급 군사회담’과 ‘남북 동시사찰’ 등의 ‘역제안’은 그동안 북한의 주장의 연장선일 뿐인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힐 차관보에게 미·북 군사회담과 남북 동시사찰을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북한이 힐 차관보에게 “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후통첩을 했으며 종전선언·고위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감에서 “사실무근”이라고 공식 부인했다. 그는 (힐 차관보의 방북은) 북핵 검증 내용에 대해 합의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검증기준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하고 있다”면서 “‘북미간 고위급 군사회담’은 북한이 그동안 계속 주장해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남북 상호사찰’ 주장에 대해 유 장관은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것이지만, 이번 검증은 북한이 6월에 신고한 내용에 국한한다는 데 다른 나라들과 의견 일치를 봤고 북한도 양해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외교소식통도 “군부가 주장하는 한반도 종전선언과 군사회담 개최는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 6자회담에서 지속적으로 개진해온 입장”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에서 영변 핵시설과 나머지 시설에 대한 분리검증 방안을 놓고 북한과 집중 협의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분리검증안’은 북한이 중국에 제출한 정식 신고서에 담긴 영변 핵시설을 먼저 검증한 뒤, 미북간 비공개 의사록에 담은 UEP(농축우라늄프로그램) 및 핵확산 문제는 추후 검증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 장관도 이날 검증 대상과 관련, “북핵 검증대상은 모든 핵시설이지만 지난 6월 북한이 신고한 내용이 1차적인 것”이라며 “고농축우라늄(HEU) 부분은 그 다음 순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힐 차관보의 방북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분리검증안’과 추가보상에 대해 절충점을 찾았을 경우 미국과 북한의 최고 수뇌부의 결정에 따라 북핵검증 협상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현재 힐 차관보가 협상한 내용을 두고 부시 정부는 최종 정책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수뇌부가 협상 결과를 승인할 경우, 곧바로 협상 결과가 공개되고 후속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후속조치로는 북한이 의장국인 중국에 미국과 합의한 검증이행 계획서를 제출하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발효시키고, 6자 차원에서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내용을 추인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 6자 수석대표회담 등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미국내 여론의 반발도 예상된다. ‘분리신고’에 따른 ‘분리검증’이 예상됐지만, 정확하고 완전한 핵 검증을 위해 ‘국제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임기 말 부시 행정부의 외교 성과를 위한 ‘또 다른 양보’에 다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