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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부터 북한 전역에 내린 폭우로 남북정상회담이 연기되고 사실상 국가 재난사태가 선포되자 이번 수해가 북한 체제 유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단 피해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주민들의 위기감도 덩달아 고조될 전망이다. 이번 수해로 북한에서는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십만 가구의 살림집 파괴, 전체 농경지의 11%가 유실됐다.
수해 여파로 식량난이 심화되고 전염병이 창궐하면 90년대 중반 아사 사태를 떠올리는 주민들도 늘어날 것이다. 북한 당국이 조기에 피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고 지원을 촉구한 것도 이처럼 주민 불만이 고조될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내각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총동원령을 내려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 복구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이 한 달이 넘게 연기된 것도 그만큼 복구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 군 관계자는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개최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북한 지도부로서는 수해로 인한 민심이반 현상을 가장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 입국한 한 탈북자는 “국가가 배급을 주지 않아서 장사나 밀무역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데 이번 수해로 장사 물건을 잃거나 집이 파괴됐다면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한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살림집이 파괴되면 임시로 천막을 지어주거나 남의 집에 같이 사라고 하는데 수 십 만 가구가 그렇게 됐는데 당분간 대책이 없을 것”이라며 “당장은 하늘을 원망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김정일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번 수해로 당장 김정일 정권에 누수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배급제 붕괴 이후 장사 성행, 외부사조 유입,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반 김정일 의식이 크게 확산돼 과거와는 다른 국면이 연출될 수 있다. 중국에 친척방문을 나온 북한 주민 중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부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번 수해 여파가 장기화 될 경우 주민들은 ‘국가 재난 극복’이라는 당국의 구호보다 김정일의 무능을 탓하는 민심 이반 현상이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이번 수해로 ‘혁명의 수도’ 평양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도 김정일의 카리스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평양은 외부사회에 공화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전시 도시’이자 북한 권력 수뇌부의 신화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처럼 북한의 심장부가 수해로 무너진 것도 김정일의 권위를 약화시킬 요소가 될 수 있다.
일단 북한 당국은 주민 동요를 의식해 긴급 구호를 실시하고 아사 사태와 전염병 방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 동안의 관례로 볼 때 구호품 배급은 정권기관과 군부대를 제외하면 주민들에게는 30% 정도만 돌아갔다. 또한 북한 당국이 수해 이후 국경을 봉쇄하거나 쌀 시장 유통 금지 등 주민 통제를 강화할 경우 역효과도 예상된다.
구호품 분배 과정에서 힘 있는 기관과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해 주민 불만이 커지고, 아사자와 전염병이 만연할 경우 사태는 의외의 국면으로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