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무비자 입국’ 강제 추방에 ‘손해배상’ 대응

▲ 91년 만수대의사당에서 김복신총리와 투자문제를 상의하는 모습. 자료사진.ⓒ데일리NK

아침 7시부터 수사관과 마주앉아 오후 1시까지 6시간이 흘렀다. 배고프니 점심 먹고 또 하자고 했다. 수사관은 기가 찬 표정으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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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점심 먹어가며 할 사건이 아닙니다. 찬구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이 사건을 여기시는 모양인데, 이 사건은 큰 사건입니다. 남의 나라에 몰래 들어오는 것은 간첩이나 망명자가 할 짓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정신 바로 박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나도 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보시오! 만일 당신이 간첩이라면 사증 없이 비행기 타고, 나 간첩이니 잡아라고 버젓이 입국하겠소? 그런 어리석은 간첩이라면 나라 망쳐 먹겠소이다.”

갑자기 간첩 말이 나오는 바람에 한바탕 옥신각신 했다.

결국 이치에 맞는 말만 하니 수사관이 TKO 당한 형국이다. 요리 조리 인상만 쓰고 죄 없는 담배만 목이 따갑도록 태우고 수사는 끝났다. 그런데 문을 나서면서 신경에 거슬리는 야릇한 말 한마디를 하고 나간다.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다음 지시 있을 때까지 안내원과 같이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방에서 기다리시오!” 명령조다.

점심식사고 뭐고 불쾌해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죄인 취급 당하면서 자존심도 상하고 짜증스러운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김영수 참사에게 인상을 썼다. 그는 별 일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한다.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모습에 화 났다는 보위원

다음날 아침 목요일 안내원 김현철이가 헐래벌떡 찾아 왔다.

“왜? 거저 미안하게 되었다,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하면 되지, 잘못한 거 없다는 식으로 말했느냐? 양담배 사 온 거 있지요. 그거 두 보루 정도 주면서 잘 처리해 달라고 했으면 자기도 잘 처리해 주려고 마음먹고 갔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잘못은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잘 했다는 식이니, 국법에 따라 조치를 할 것인지 상부와 토론해서 처리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벌 받을 각오는 돼 있다. 몹시 피곤하다. 방에 들어와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날짜 별로 계획서를 만들었다. 수사당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몰랐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기다려 보기로 했다.

수요일은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목요일은 오전부터 상담할 상대를 호텔로 불러 일단 상담을 하게 해주었다. 이것도 특별히 수사당국 몰래 하는 일이라고 했다. 호텔 밖으로는 나갈 일도 없지만 호텔 안에서만 행동하게 했다.

저녁 식사 후 안내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여러 관계부서가 모여 토론을 한 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사증 없이 입국한 제 1호이기 때문에 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사정을 참작하여 용서한다든지, 경고 정도로 해결해 버린다면 선례가 되기 쉽고, 또 나라의 위신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호히 처리하여 사상적인 문제가 없는 한 일단 추방명령을 내리되, 재발 방지를 위해 일단 출국하여 북경대사관에서 사증을 받아 재입국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 짓겠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니 토요일 일단 출국하여 당일 북경 대사관에 가서 사증을 받아 아침에 탄 그 비행기를 다시 타고 입국하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안내원 현철에게 분명히 말했다.

강제추방해도 비행기값은 줘야 할 것 아닌가

“결국 강제추방하는 것인데, 내 말 잘 들어라. 원래 강제추방이라 하는 것은 범죄사실이 있을 때 국내에서 징역을 살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강제추방을 명령하여 영원히 재입국 기회를 상실하게 하는 것인데, 나를 강제추방 한다는 것은 영원히 공화국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 아니냐? 내 발로 안 나갈 테니 마음대로 해라! 정 내보내고 싶다면 비행기 표를 준비해라. 분명히 상부에 전달해라.”

다음날인 금요일. 더 이상 버텨봐야 안될 것이고 일단 나갔다가 와야 한다는 것은 이미 나도 알고 마음속으로는 결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 내가 하는 사업도 한번 약속은 법과 다름없이 꼭 지켜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주지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녁 무렵 안내원 현철이가 요란하게 문을 두들긴다.

“찬구 선생! 문 좀 열어 보시라요. 한시해 부위원장 동지께서 오셨습니다!”

한시해라? 초대 유엔 북한대사를 6년 동안이나 지낸 사람 아닌가? 지금은 미주 동포담당 총 책임자다. 이쯤 되면 정말 일은 잘 되어가는 징조다. 더 이상 더 버티면 사나이 자존심에 금이 간다. 아무런 일 없었듯이 문을 활짝 열어 웃으며 마중을 했다.

미국을 잘 아는 실력파 한시해 전 대사. 영어를 미국 사람보다도 더 잘 한다는 미국통이다. 자초지종 내용을 보고를 받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번 일에 대하여 내부적으로 원인 규명을 한 결과, 업무상 차질이 생겨 사장 선생을 고통스럽게 한 것에 대한 사과는 내가 하겠으니 나를 봐서라도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공항에서부터 수사당국으로 연행해야 한다고 사장 선생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해서 우리는 또 얼마나 애를 썼는지… 만일 그때 바로 수사당국으로 연행되면 구속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사건이 더 커지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북한당국에 비자 미발급에 따른 손해배상 정식 요구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한시해 부위원장, 로철수 참사 등과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북경 왕복비행기표도 받았다.

그러나 수사당국에서는 이런저런 수상한 행동들이 그동안 많았다면서 계속 의심했다고 한다. 사실 사건으로 치면 아주 큰 사건이다. 만일의 경우 구속돼 간첩혐의라도 둘러 씌워 매스컴에서 떠들었다면 어떻게 될 뻔했나 아찔한 생각이 든다.

식사에 함께한 사람들은 ‘무슨 간이 그렇게도 크냐’고 한다. 이쯤 되면 기가 죽어 시키는대로 하는데, 날이 갈수록 뭘 잘했다고 배짱을 내밀어 참으로 황당했다고 말한다.

이리하여 4일간의 전쟁(?)을 끝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공항에서 너댓 시간 걸린 것은 수사당국에서는 연행하겠다고 하고.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는 안 된다고 하고. 결국 김복신 부총리와 원호위원회 위원장이 공항으로 직접 전화해 신변인수를 했는데, 조건이 보통강 호텔로 숙소를 정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출국하려는 토요일 아침 호텔 계산서가 나왔다. 평상시 같으면 약 500불이면 되는데 두 배가 나왔다. 호텔 직원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장 선생은 범법자이기 때문에 일반 숙박비보다 두 배로 계산했습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계산해야 한답니다.”

“뭐 범법자? 내가 왜 범법자냐?”

또 한번의 소동이 벌어지고 호텔 로비 카운터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총지배인을 부르고 난리가 났다. 호텔 방 짐은 그대로 두고 서둘러 여권과 표만 가지고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에서 출입국관리 사무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란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아- 사장 선생은 운이 참 좋은 기야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고생 좀 했을 기야요! 요 다음 또 사증 없이 들어 오시라요. 그때는… 알갔지요? 잘 가시라요! 오늘 오후 비행기로 오십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만납시다”고 대답했다.

북경에 도착 하자마자 내 회사 북경 지사장과 연락하여 호텔예약 대기시키고 대사관에는 가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월요일 사증 받아 화요일 평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한번의 소동이 벌어졌다. 북경 조선대사관 영사부장이 내가 오면 즉시 사증을 줄 거라고 미리 만들어 기다려도 내가 나타나지 않아 그도 애가 타서 비행기 떠날 시간까지 기다린 모양이었다.

평양에 가기 위해 화요일 아침 일찍 북경대사관에 갔더니 영사부장이 나를 보는 순간 기가 막혀 손짓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오란다. 커피 한잔 타 놓고 차분히 나를 설득한다. 결론은 한마디로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나는 평양에 가서 정식으로 북한 당국에 비자 미발급으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문건을 접수시켰다. 서방 세계는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제대로 하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해외 영접부 김선옥 부부장 앞으로 정식 공문을 작성하여 안내를 통해 전달했다. 전달된 것만도 다행이었다.

나도 문건이 전달된 것으로 만족하고 이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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