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왔던 탈북 루트에 최근 중국 공안(公安·경찰)이 급습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중국 땅을 건너기 전 당국의 감시를 피해 안가에 은신해 있던 탈북민들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공안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체포돼 북송 절차를 밟게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중국 내 주요 탈북 루트가 연이어 공안에 발각되고 있다. 탈북민이 이동 중 감시 초소에 걸려 체포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요 근래에는 탈북민들이 라오스나 태국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은신해 있는 안가까지 공안의 표적이 돼 파헤쳐지고 있다.
초소가 없고 인적이 드문 산기슭에서도 공안의 탈북민 검거 작전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중국-라오스 국경지역에서 산을 타고 이동하려던 탈북민 8명이 근처에 잠복해 있던 공안에 적발돼 체포, 북송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는 공안이 초소에서 선택 검열하는 식으로 탈북민을 체포했던 것을 고려하면, 인적 드문 곳에서 잠복까지 하며 탈북민 체포에 열을 올리는 건 이례적이다.
중국 공안의 탈북민 감시가 급격히 강화된 건 중국이 체제 안정을 위해 자체적으로 내부 단속을 강화한 데 따른 결과일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활동하는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 측의 ‘로비’가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 보위원 등이 중국서 활개를 치며 탈북민을 체포할 수 없으니, 중국 공안에 모종의 대가를 제공하고 탈북민 체포를 독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데일리NK가 지난해 말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북한 국가보위성이 국경연선지역 광산에서 생산한 금(金) 일부를 중국 측에 북송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위성이 공안 일부를 비공식적으로 포섭해 금전적 대가를 제공한 뒤 탈북민 체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올해 초까지 중국 국경지역에 탈북민 신고를 독려하는 포상금 전단과 플래카드까지 등장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에는 공안이 체포된 탈북민이나 브로커에게 ‘뇌물’을 받고 풀어주는 경우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탈북민 체포 후 북송 시 북한 보위성으로부터 더 큰 대가를 받기로 약속한 게 아니냐는 게 현지 소식통들의 지적이다.
물론 북한 당국이 중국 공안에게만 탈북민 체포를 맡겨 두진 않는다.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 도(道) 보위성이 파견한 반탐처 지도원들이 탈북민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제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들이 탈북민 동향을 파악해 보위성에 보고하면, 보위성이 이를 중국 공안에 전달해 탈북민을 체포하도록 하는 것이다.
심지어 보위성에 포섭된 북한 주민이 탈북민으로 위장해 중국에 은신해 있는 탈북민들에게 접근하는 사례도 있다. 소위 보위성 스파이 노릇을 하는 이 주민은 과거 탈북 시도나 위법 행위를 하다가 체포됐다가 처벌 없이 풀려나는 대가로 보위성 협조를 약속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중국으로 넘어가 탈북민 대열에 합류한 뒤 휴대전화를 켜놓으면, 보위성이 이 협조자의 위치를 파악해 탈북민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보위성이 위법 행위로 체포해온 북한 주민을 취조하다가 처세술이 좋은 인물을 발견하면, 석방을 미끼로 보위성 협조를 강요하기도 한다”면서 “이렇게 포섭된 주민은 주로 탈북민 대열을 감시하는 임무를 받게 된다. 탈북민으로 위장한 채 중국 내 탈북민 대열에 합류한 뒤 휴대전화로 보위성에 위치를 발신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보위성이 탈북민들의 사진을 중국 변방대에 제공하고, 이들에 대한 체포 및 북송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초에는 평안북도 국경지역에서 가족 10여 명이 잡단 탈북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보위성이 이들의 사진과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단둥(丹東) 변방대에 넘기고 공조를 요청했다고 평안북도 소식통이 알려온 바 있다. (▶“北보위부, 주민 집단탈북에 사진 뿌리고 中에 북송 요청”)
당시 중국 현지 소식통도 “중국 변방대가 불시에 상인들의 가택에 들이닥쳐 탈북 방조 혐의가 있는 상인들을 끌고 가 조사하기도 했다”면서 “변방대와 공안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등 랴오닝(遼寧)성 곳곳에서 연일 검문검색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금전적 대가 외에도 공안을 포섭하기 위한 북한 측의 전략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공안의 신속한 출동을 유도하기 위해 중대 범죄 사건을 발견했다고 거짓 제보를 하는 식이다.
실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올해 탈북민들이 은신해 있던 안가에 공안이 ‘마약 밀수자를 잡겠다’며 들이닥쳤다가 탈북민들을 체포해갔던 사례가 최소 3건 있었다. 공안이 마약 밀수 장소로 알고 갔던 곳이 알고 보니 탈북민들의 안가였고, 이에 공안도 우연히 탈북민들을 체포해 이송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단체 관계자는 “중국 공안은 탈북민 체포가 주 업무는 아니기 때문에 ‘탈북민이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체포해달라’고만 하면 신속히 움직이지는 않고 대신 ‘마약 밀수 현장을 알고 있다’고 신고하면 공안이 즉시 출동한다는 점을 해당 제보자가 노린 것 같다”고 전했다.
HRW에게 이 소식을 전한 중국 현지 활동가들은 공안에 이 같은 제보를 하는 게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중국 공안이 탈북민을 ‘불법월경자’로는 보되 북한만큼 적극적으로 탈북 차단에 나서지 않으니, 북한 측에서 ‘마약’ 등 허위 제보로 공안을 움직여 탈북민 체포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中, 탈북민 난민 인정 않는 한 국제법으로도 북송 강제 못해
이처럼 북한 당국이 탈북민 체포에 중국 공안을 활용하는 전략을 강화하면서, 중국 내에서 탈북민 운신의 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나 오래 전 중국과 북한이 체결한 국경의정서도 중국이 탈북민에 대한 북송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은 1986년 북한과 ‘변경 지역의 국가안전과 사회질서 유지 업무를 위한 상호협력의정서’를 체결한 이래 자국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들을 체포해 돌려보내왔다.
이에 국제사회는 중국이 국제 규약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북송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최종보고서도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국제적 보호를 해야 한다면서 중국에게 “국제난민법과 인권법에 명시된 강제송환 금지 원칙에 따라 탈북민 북송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실제 중국은 1988년 10월 4일 비준한 고문방지협약 제3조에 의해 자국으로 피신한 개인이 고문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여겨질 시 본국으로 송환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중국은 1982년 서명한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유엔 난민협약)’ 제33조에 따라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국가로 사람들을 추방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하지만 중국은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 월경자’로 보겠다는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중국 외무부도 ‘불법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은 북한 주민은 난민이 아니라 중국 법률을 위반한 사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2013년 12월 30일 중국 당국은 유엔 COI에 보낸 서신에서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북한 주민들이 북한에서 고문을 당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듬해 유엔 COI 보고서는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중국이 북한 주민과 관련해 난민 협약상의 국제적 의무에 합치하는 방식의 진전을 보이는 상황을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북한 주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중국 공안의 북송 협조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마땅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국이 서명한 난민협약조차 특정 국가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전적으로 체류 국가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 또한 유엔 차원에서 매년 북송 중단을 권고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legal binding force)이 없어 중국을 강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