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리근 취재진에 ‘병주고 약주고’

지난 16∼17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6자회담 비핵화 회의에서는 북한측 수석대표로 참가한 리 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외국 취재진과 벌인 신경전이 막바지를 인상깊게 장식했다.

리 국장의 기자회견은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성사됐다.

그는 전날 오후 전체회의가 끝날 무렵 자신의 숙소인 칠보산호텔 관계자를 통해 로비에서 대기 중인 취재진에게 오후 5시반을 전후로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리 국장이 탑승한 승용차가 호텔에 도착한 오후 5시20분께 한 회담 수행원이 먼저 나타나 취재진을 향해 “호텔 바깥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각자 자리를 꿰차고 있던 취재진은 다시 장소를 옮길 경우 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질서를 잘 지킬테니 호텔 내부에서 하자”고 부탁했고 이 수행원은 “그럼 의견을 전달하겠다. 하지만 안 될 수도 있는 여지는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며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승용차에서 내려 화난 듯한 얼굴로 호텔로 들어선 리 국장은 로비에 운집한 기자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 숙소로 올라가 버렸다.

갑자기 황당한 일을 겪은 취재진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화를 억누른 채 각자 원인을 찾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리 국장이 밤 9시께 혹시 기자회견을 다시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호텔 로비에 계속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에게 호텔 관계자를 내려보내 “오늘은 아무 일도 없다. 내일 공항으로 나갈 때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계획을 재차 통보해 심기가 불편해 있는 취재진을 달래는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18일 오전 칠보산호텔에는 일찌감치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취재진이 몰려 들었다. 취재진은 전날 요청을 받아들여 대로변과 인접한 호텔 주차장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대기했다.

이날 역시 장소가 문제였다.

호텔에서는 결혼식까지 열려 주차장에는 하객들이 타고온 승용차로 빈틈이 없었고 주변마저 소란해 말 한마디가 생명인 기자회견 장소로는 최악이었던 것. 주차장 빈틈에 겨우 자리를 정했던 취재진은 호텔측으로부터 출입문 계단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2차례나 더 뒤로 물러설 것을 요구받았다.

취재진은 전날과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낮 12시께로 예정됐던 회견이 12시30분으로,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오후 1시로 미뤄지면서 “이렇게까지 취재를 해야 하느냐”며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리 국장은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호텔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수고들 했습니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하고픈 얘기만 전달하고 자리를 떠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질문할 것 있으면 하라”며 요청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한 기자는 “리 국장이 기자 다루는 방식도 북한의 협상술을 꼭 빼닮았다”고 촌평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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