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루마니아식 극적 붕괴 가능성 크다”

북한 급변사태 관련 논란이 뜨겁다. 야당을 비롯한 햇볕지지 세력은 북한 붕괴론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북한 급변사태는 이념과잉과 비현실적 사고의 포로”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대에 사로잡힌 이명박 정권이 대북정책의 실패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3대세습 실패는 필연이고 김정일의 부재는 조기에 북한 급변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지난해 2월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될 것(위키리크스 폭로)”이라고 말했다. 사견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외교안보정책 담당자의 발언이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통일부는 내년 사업 계획의 큰 흐름을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유도와 통일준비’로 잡았다. 통일부의 당연한 역할이라는 설명을 달았지만 사실상 북한 붕괴 대비의 필요성이 강조된 내막이 있다. 위키리크스 폭로내용에 따르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에게 “김정일은 2015년 이후까지 살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갑작스레 붕괴할 경우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 필요성을 가장 많이 언급하는 곳은 한미연합사령부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이달 20일에도 “북한의 불안정 사태, 급변사태 발생 때 북한은 붕괴할 것이며 우리는 북한 주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기 때문에 전면전과는 상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철환 북한민주화전략센터 대표는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사실상 체제를 지탱할 힘을 잃었다. 김정일의 건강이 체제 수명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북한 당대표자회 결과 분석 발표에서 “북한이 김정은 후계 체제 아래서 치명적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60∼70% 정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 환경은 이미 위기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은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유엔의 대북제재가 계속되면서 국제적 고립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나마 중국이 최근 김정일 체제를 지원하는 모습이 유일한 위안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것은 평상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북한 체제가 위기에 봉착할 경우 중국의 지원은 강한 변화 요구를 동반할 가능성이 커 적잖은 부담이 뒤따르게 된다.


2009년 통계청 기준 무역총액이 남한은 6866억 달러인데 반해 북한은 34억 달러로 200배 차이가 넘는다. 이마저도 북한은 교역의 약 90% 가량을 중국과 남한에 의존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인해 남한과의 경제협력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유엔제재로 북한의 주요 수출품목인 대량살상 및 불법무기거래는 지속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남한과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난 상태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근접했지만 북한은 1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009년 기준 우리가 1,063조 590억 원이고 북한은 28조 4,840억 원이다. 종합적으로 우리는 경제규모가 전세계적으로 10위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북한은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쟁력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가 167개국을 대상으로 2010년도 민주주의 발전 정도를 측정한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8.11점으로 20위를 차지했고 북한은 167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북한 주민들도 탈북자들과의 연락과 대북방송 청취, 남한 드라마 시청을 통해 남북한의 생활상을 생생히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북한 주민들의 경제난에 대한 염증은 당국에 대한 극도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군대에서도 하급 간부와 병사는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다. 화폐개혁 실패로 당국에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노동당 간부들마저 수령과 당에 대한 주인의식과 사회주의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다. 간부들의 부패는 더 이상 공정한 행정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결국 당 간부는 인민을 갈취하고 군대는 인민의 재산을 노리는 도적떼로 전락했다.


이러한 내외적 위기에도 현 북한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김정일의 권위와 권력 장악능력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 경제, 교육, 의료 시스템 붕괴에도 체제 유지를 위한 감시 통제기구와 처벌은 존속되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국가를 김정일의 권력 장악력과 주민에 대한 감시와 처벌 같은 공포심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햇볕세력이 김정일-김정은 체제에서 급변사태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 및 주민 통제력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후유증으로 병색이 완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북한 체제 유지에 대한 의구심은 매우 커졌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을 서두르는 것은 그만큼 김정일의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되고 15년 후에 공개적인 직위를 차지했다. 김정은은 내부교양 2년 만에 대장의 군사칭호를 받고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김정일은 곁가지(삼촌 김영주 및 계모 김성애) 투쟁에서 드러나듯이 권력에 대한 집념이 뛰어나고 권력 통제에서는 정치공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타고난 감각을 가졌다. 인민군에서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오진우를 측근으로 끌어들인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인민들에게 신처럼 떠받침을 받던 아버지 김일성 아래서 오랜 기간 정치 훈련을 거쳤다. 그의 후계자 시절은 비교적 북한 사회가 안정된 시기였다. 이중삼중의 감시와 포악하고 냉정한 성격은 고위 간부들이 김정일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반해 김정은은 나이가 어리고 권력 수업 시간이 매우 짧은 데다 몰락 직전에 국가경제와 극도로 악화된 민심 아래서 권력을 이양 받게 된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최고의 조건을 가졌다면 김정은은 말 그대로 최악의 조건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김정일의 갑작스런 유고가 생긴다면 김정은의 정치감각이 뛰어나다 해도 북한 권력 내부는 매우 혼란스런 분위기가 연출될 공산이 크다.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김경희나 장성택, 군 고위 간부들과 권력을 분점하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김정은이 철저하게 간부들을 장악 감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주민들에 대한 감시망도 엷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방치되면 권력이 두 개의 구심을 갖기 어려운 특징을 고려했을 때 권력투쟁은 필연적이다.


2009년 1월 미국 오바마 정부 수립에 맞춰 미국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서 작성한 북한급변사태 대비(Papering for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보고서는 “권력승계 경쟁에서 권력투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누가 궁극적으로 최고 권력을 쟁취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장기화되고 분열적이며 잠재적으로는 폭력인 승계 투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권력투쟁은 관련된 지도자가 내부 지지나 주요 자원을 얻기 위한 자금 조달력과 토치력, 개인네트워크, 조직능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면서 “특히 인민군과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원은 잠재적 권력투쟁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특히 군부 내의 당파가 존재한다면 평양 내의 경쟁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체제전환과 북한 급변사태의 비교 고찰’이라는 학술 논문을 제출한 이종철 씨는 “북한 급변사태 발생의 다양한 유형은 크게 김정일의 사망, 민중봉기, 쿠데타, 전쟁이라는 네 가지 형태로 포섭될 수 있다”면서 “북한 급변사태 전개의 시나리오는 김정일이 사망함으로써 혼란이 야기되는 경우, 민중의 저항 및 지배세력의 분열에 직면해 붕괴하는 경우, 내전(內戰)으로 비화하는 경우, 통일 현안에 대한 새 지도부의 선택 등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급변사태는 극적 붕괴로서 루마니아와 같은 형태로 촉발될 가능성이 가장 크며, 만일 김정일-김정은 권력 세습이 안정화 기간에 도달한다면 지배세력의 분열을 중심으로 한 소련형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여진다”고 주장했다.


김영환 연구위원은 “정치라는 것이 수백 가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김정은이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방치한다 해도 일시적 혼란기를 극복하고 그럭저럭 몇 년을 더 넘길 수도 있다”면서도 “김정은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이를 극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몇 년 지속하는 수준에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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