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러시아 벌목공 비명횡사해도 비굴한 태도 못 벗어나”

북한 해외노동자가 겪고 있는 참혹한 인권유린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체제 유지에 필요한 통치 자금 마련 목적으로 자국 노동자를 해외로 내몰면서도 월급을 빼앗는 북한 당국의 횡포에 국제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북한으로 귀국할 때 여비조차 없어 사업소에 도움을 청하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차마 빈손으로 집에 갈수가 없어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처럼 러시아 전역에 신분증도 없이 마음 졸이며 숨어 지내는 북한 노동자들이 많다.”

지난 2010년까지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했던 최철(가명) 씨의 증언이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에 의해 조직적인 인권 유린에 시달리다 탈출, 미국 워싱턴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최 씨를 현지에서 만났다.  

최 씨는 “월급을 북한 당국에 모두 빼앗기고 탈출해 숨어 지내던 노동자들이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면 북한 대표부로 넘겨지고, 이후 강제 압송 당한다”며 “(노동자들은) 숨어 지내면서 마련한 돈마저 (당국에게) 모두 몰수당하고 북러 접경 지역에 있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3개월간 온갖 고역에 시달리다 초죽음 상태가 되어서야 집으로 보내진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인권 유린은 노동 현장에서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새벽 5시부터 12시간동안 영하 30~40도 강추위 속에서도 벌목 과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특히 안전대책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나무에 머리를 맞아 뇌진탕에 쓰러지고, 몇 미터가 넘는 눈 속에서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통나무에 깔려 냉동시체로 귀국하는 모습을 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나 자국민이 해외에서 비명횡사를 당해도 북한 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최 씨는 “러시아 현지에서 취객이 휘두르는 흉기에 숨진 어처구니없는 사고에도 진상요구를 하지 않았던 당국의 비굴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주검이 되어 열차에 실려 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린다”면서 “자국민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 체제에 환멸을 느끼며 탈출을 꾀하려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러시아 벌목공 출신 최철(가명) 씨와의 인터뷰 전문]

-러시아 외화벌이 나오는 것도 북한에서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폐쇄된 북한에서 해외로 나간다는 자체가 큰 행운이다.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해 주민들은 돈을 어떻게든 마련해 대외파견부서에 뇌물을 준다.

1990년대 말 북한 당국은 국가경제난 해결 목적으로 각 도, 시, 군에서 러시아 벌목 노동자를 선발했다. 배급제가 붕괴되던 시기 주민들은 가정을 지키겠다면서 가산을 팔아서라도 뇌물비용을 마련했다.

해당거주지 동사무소, 인민반장, 보안서(경찰), 공장기업소, 보위부, 병원 신체검사, 아내의 허락이 수속절차 과정이었는데, 아내 허락을 제외하곤 뇌물 없이 통과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최종적으로 중앙당 임업성 간부의 인터뷰가 있는데, 뇌물 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갔다.

당시엔 해외에서 마음껏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 뇌물을 아끼지 않고 상납했다. 이렇게 2000년대 초 동료들과 러시아 씨비리(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2박 3일 만에 러시아에 도착했다.”

-러시아 노동자 파견에 기대가 컷을 것 같다. 당국은 월급을 얼마로 책정할 지 미리 알려줬나?

“북한은 근로계약서나 월급책정이라는 상식도 깡그리 무시한다. 러시아에 나오기 전 도당 간부로부터 (러시아에서) 임업 생산이 정상화되면 노동자에게 평균적으로 월 300달러를 줄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 월급이 300달러라면 3년(기본 근무 기간) 대충 계산해 봐도 1만 달러다. 숙식비용을 제외하고 최소 5000달러를 벌 수 있겠다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딴판이라는 것을 6개월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직접 손에 쥔 월급이 70~80달러였다. 그것도 동기(冬期)에만 가능한 월급이었다. 여기서 동기 생산기간은 10월부터 5월까지다. 우리가 죽도록 일해서 받은 월급은 임업국에서 40%, 연합기업소에서 20%, 생산사업소에서 15% 운영자금으로 제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월급의 25%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셈이다.

여름엔 주로 채벌지로 가는 도로나 자동차, 설비 정비를 한다거나 새로운 채벌지를 찾아내 그곳으로 가는 도로를 개설하는 일을 했다. 여름에는 월급이 반 이상 줄어든다.”

-여름에 월급이 반으로 줄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당국에서 숙식은 보장해주는가?

“생활필수품과 식료품은 자체 해결이다. 사업소에서는 쌀, 된장, 간장, 소금, 노보(작업복) 등을 공급했지만, 이마저도 월급에서 공제한다. 결국 당국은 그냥 노동자 숙소로 뼈대만 있는 건물만 제공할 뿐이다. 노동자들은 돈 한 푼이라도 절약하자는 마음에서 러시아에 흔한 질경이, 버섯, 민들레를 캐 부식물로 대용한다. 또 파철(破鐵), 동(銅)을 비롯한 금속류를 채집하고, 산열매도 따서 현지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내다팔기도 하면서 돈을 모은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까마귀동산’이라는 곳이 있었다. 러시아 마을 쓰레기장에 식품과 옷가지들이 가득 버려져 까마귀들이 새까맣게 날아들었기 때문에 까마귀동산이라고 불렀다. 북한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입을 만한 옷가지와 쓸 만한 물건을 얻느라고 자주 가곤했다. 낡은 TV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북한에 가지고 가면 돈이 된다고 생각해 부품들을 하나하나 뜯어 보관던 사람들도 있었다. 

물품들은 숙소에 보관하지만, 피같이 모은 돈은 한 푼이라도 잃을까 우려해서 몸속에 주머니를 만들어 목욕시간 외 한시도 떼놓지 않는다. 이렇게 3년을 보관하여 북한 집에서 풀어놓으면 돈에 땀내가 배겨 악취가 진동할 정도였다.”

-일하는 현장에 안전대책은 마련돼 있나?

“해외에 나가 있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건 정부의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의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치고 있다.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목숨과 다를 게 없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의 사건사고는 비일비재하다.
 
통나무에 깔려 다리뼈가 완전히 부서져 불구가 되는 경우, 당국은 노동자를 치료와 보상을 해주기는커녕 귀국조치를 내린다. 한순간에 장애인이 되어 목발을 짚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마음이 어떨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다.

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뇌진탕으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통나무를 보면서도 깊은 눈 속에서 일하느라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깊은 산속에서 임시숙박소를 만들고 잠을 자던 중 화재로 그 자리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한번은 식품을 사려고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내려갔다 취객이 휘두르는 흉기에 맞아 멀쩡한 노동자가 숨진 사건도 발생했다.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던지. 특히 러시아 정부에 아무런 사건 진상 요구를 하지 않는 북한당국의 비굴함과 비인간성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또한 노동자들은 냉동시체로 열차에 실려 가는 동료들을 볼 때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린다.”  

-북한 당국은 현장에서 이탈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살아남기 위해 식품을 사고 추위를 견디느라 술을 사고 나면 빚더미에 오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돈 한 푼 없이 빈손에 귀국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부모와 처자식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사업소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이런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탈한 노동자들은 신분증도 없이 마음 졸이며 돈벌이에 몰입한다. 위험하지만 개인이 일한 만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 쉽다. 하지만 러시아 경찰에 체포돼 북한 대표부로 넘겨지면 돈을 모조리 압수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북러 접경지역에 있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3개월 고역에 시달리다가 초죽음이 되어 집으로 보내지는데, 여비도 없이 가족에게 연락해 데려가라고 한다. 이제는 이런 실태를 해외 노동자들도 알만큼 알고 있다. 당국이 아무리 억압해도 자국민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 체제에 환멸을 느끼며 탈출을 꾀하려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