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새벽 4일 간의 남북 고위급 접촉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대북확성기의 효과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체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로 북한이 먼저 대화제의를 해왔고 협의 과정에서도 성의 있는 태도를 일관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이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니라 전연(前緣)지역에 배치된 젊은 군인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에 사활을 걸었다는 평가다. 김정은 체제 유지의 보루(堡壘)라고 할 수 있는 북한 군인들이 대북 확성기를 통해 전투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대북확성기를 통해 인권유린과 만행 등 김정은 일가의 실체가 알려질 경우,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군인들의 충성심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군 출신 고위 탈북자는 25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한국 노래 한 곡이라도 북한 지역에 유입되기 시작하면 북한 군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콧노래로 따라 부르다가 결국 한국 대중가요에 흠뻑 빠져버리게 된다”면서 “이처럼 남한에서 들려오는 평범한 이야기마저도 북한 체제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북한 정권은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북한 주민들 간에 쉬쉬하며 돌았던 외부 세상의 이야기나 김 씨 정권의 실체가 대북방송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면 당연히 군인들이 동요하지 않겠냐”면서 “대북심리전은 즉각 효과가 있는 건 아니더라도 북한 체제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탄보다도 더 강한 공격 수단이다”고 덧붙였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도 “현재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신세대 북한 청년들에게 대북심리전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국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생존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북심리전의 효과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식량 위기를 겪으며 체제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 ‘내가 왜 북한 사회에서 고립돼 살아야 하나’라는 의식이 빠르게 싹트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복무 기간이 10년에 달하는 북한 군인들은 안 그래도 정보에 갈증을 느끼는 상황”이라면서 “이들을 향한 대북심리전은 그야말로 북한 청년들을 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각성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전문가들은 북한의 도발을 비롯한 비정상적인 행위를 할 경우에 대북확성기 등 심리전을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는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의 대리인으로서 참석해 도출한 매우 중요한 약속”이라면서 “만일 북한이 또 다시 도발해온다면 확성기뿐만 아니라 전광판까지 설치해 대북심리전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도 “합의문이든 뭐든 중요한 건 남북 간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동안 북한은 앞뒤가 다른 모습도 자주 보여 왔고 같은 합의문을 두고도 우리와 해석을 달리해온 바 있는 만큼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돌출 행동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군 출신 고위급 탈북자는 “북한이 합의를 어길 시에는 확성기를 5개, 10개씩 늘려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 강화해야 한다”면서 “이 외에도 대형 경기장 등에 있을 법한 전광판을 최전방에 설치하거나 애기봉 탑 등을 다시 세워 대북심리전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