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 계획과 관련, 최근 북측이 한미연합훈련을 거론해 수령 거부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세계식량계획(WFP)에 남측의 쌀 지원 수령 거부 의사를 보였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 “WFP와 북한과의 실무적인 협의 과정에서 북한 내부의 이러한 입장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정부는 WFP를 통해 북한 측의 공식 입장을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미연합훈련 ‘동맹 19-2’를 문제 삼아 “현실화한다면 조미(북미) 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미국을 압박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우리 정부의 식량지원을 발목 잡고 나선 것이다.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을 흔들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 정부는 WFP와 북측 간 실무협의 과정에서 이 같은 동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일 뿐, 북측의 최종적인 공식 입장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면서 관련 상황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므로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최종 입장인지 알 수 없는 단계에서는 좀 더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명확하게 (쌀을) 안 받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북측이 한미연합훈련을 거론해 우리 정부의 쌀 지원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인사 명의의 서면이 나오는 등의 공식적인 의사 표명은 아니므로 명확한 북측의 입장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WFP는 평양에 있는 WFP 사무소가 카운터파트인 북측 외무성 담당자와 협의를 진행하던 중 한미연합훈련을 거론하며 남측의 쌀 지원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지난 주말께 우리 정부에 알려왔다.
정부는 일단 식량지원과 관련한 행정적·실무적 절차를 주관하고 있는 WFP를 통해 북측의 의사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WFP에서 수시로 협의하고 있기 때문에 (최종 입장을 달라는) 내용이 오가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시한은 없다”고 말했다.
북측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실무협의 과정에서 내부의 부정적 기류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식량지원을 거부할 소지가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상부의 지시 없이 실무급에서 그와 같은 언급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부 당국자의 언급대로 북측이 서면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다면, 이는 국제기구를 통한 남측의 식량 지원을 거부한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대북 직접지원의 경우에는 과거 남북 간 협의 과정에서 무산된 사례가 있지만, 북한이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을 거부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원칙적으로 해당 국가의 요청을 받고 국제사회에 어필해 전달하는 것이므로, 북한 당국이 어필했던 사항을 번복하는 문제라 사례가 흔하지 않다”고 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국제기구의 보고서 발표 이후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WFP를 통해 국내산 쌀 5만 톤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최근 WFP와 공여 관련 절차를 진행해 왔다.
정부는 당초 이달 내 북측 항구로 쌀을 실어나를 첫 선박을 출항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북측의 수령 거부 분위기가 파악된 상태에서 선박 수배를 확정하는 등의 진전된 절차를 진행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달 중 1항차 출발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렇듯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올해 북한의 쌀 수확량이 물 부족 등으로 인해 136만 톤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농무부는 22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4~6월 북한 농업의 특징으로 ▲낮은 평균 강수량 ▲농업용수 조달능력 부족 ▲평년보다 건조한 기후 등을 꼽으며 이같이 예상했다. 특히 농지 1㏊당 쌀 생산량은 4.18 톤으로 지난해보다 15% 낮을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