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학생 잡는 고달픈 교도훈련 아시나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지 12년 되었다. 대학생활 중 6개월 과정의 교도훈련기간 역시 가장 힘들었던 시간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그것은 교도훈련 기간에 가장 많은 ‘도적질’과 가장 많은 양의 인분을 퍼냈던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북한의 대학생 교도훈련은 보통 여름교도(5월~10월)와 겨울교도(11월~4월)로 나누어 6개월간 진행한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6개월간 교도훈련을 필수과정으로 꼭 마쳐야 한다.

교도훈련기간 개인적인 사정이나 건강상 이유로 교도훈련을 하지 못하면 자동 휴학처리가 되어 졸업이 1년씩 늦어진다.

필자는 92년에 겨울교도로 함경도 해안도시의 산위에 있는 고사총 중대에 배속되어 11월부터 93년 4월까지 군사훈련을 받았다.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은 북한에서 가장 바쁜 계절이다. 겨울용 난방준비와 김장을 비롯한 겨울나기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사총의 작동원리와 사격연습 등 기초훈련을 7일정도 받았다. 기본훈련을 마친 다음날 사관장(현역군인)은 겨울 김장용 배추와 무를 준비한다며 낮에 취침시간을 주며 잠을 자라고 했다.

군사훈련이 없는 ‘도적 훈련의 달’ 11월과12월

밤 11시가 되자 사관장이 병사들과 교도훈련생들을 모주 소집했다. 소대별로 나누어 농장 채소밭에 내려가 배추와 무를 도둑질하라고 지시했다. 훈련생들은 보통 두, 세 차례 남새(채소)를 담아 왕복했다. 이 수송작전은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중단하고 돌아간다.

이렇게 거의 한 달 동안 농장을 돌며 배추와 무를 도적질하여 모아 놓으니 양이 엄청났다. 도둑질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하고 나니 다음 밤일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무 도둑질이었다. 역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좀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2인용 톱으로 큰 나무들을 베어 가지를 친 다음 두 명이 어께에 멜 수 있을 정도로 잘라서 부대로 날랐다.

나무 도둑질은 거의 한 달 동안 계속돼 그해 12월 30일까지 해야 했다. 새해가 돼 이제는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새해가 지나고 1월 10일경 소대별로 인원을 뽑아 대대지휘부로 내려 보냈다. 대대로 내려가니 다시 분대로 나누어 대대군관(장교)들의 사택으로 보냈다. 사택에 간 병사와 훈련생들은 나무를 자르고 도끼로 장작을 내어 해가 잘 드는 곳에 사각형 모양으로 쌓아 까지 주었다.

손꼽아 기다리는 퇴소일

보름 정도 일을 하고 난 다음 우리는 다시 새 일거리가 생겼다. 대대지휘부에 있는 인분을 퍼내는 일이었다. 그것뿐 아니라 구석구석 쌓여 있는 각종 쓰레기와 오물을 치우는 것도 함께 했다.

심지어 대대지휘부의 가족 중 사망자가 생겨 장례를 치르게 되자, 필자가 속한 소대를 동원시켜 산에 올라 언땅을 파고 묘 자리까지 만들어 주었다.

당시의 수모는 말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항변할 도리가 없었다. 현역군인들은 대학교도생들을 보통 “어이 교도생”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변소의 인분까지 퍼내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도 조금만 잘못하면 모욕감을 주는 말을 마구 했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이건 교도대가 아니라 ‘개대대’야”로 불렀다. 당시 ‘개대대’라는 말은 일은 죽도록 하면서도 모욕과 멸시를 받는 것을 개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교도훈련 6개월 중 군사훈련은 10일 정도 밖에 받지 못했다. 교도생활 중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으로 병을 만나 학업을 포기한 동기생도 생겼다. 교도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우리보다 앞선 훈련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2층으로 된 침대의 구석구석에는 ‘앞으로 90일 남았다’, ‘앞으로 70일 남았다’, ‘앞으로 50일 남았다’, 심지어 ‘앞으로 240시간 남았다’ 등 훈련이 끝나기를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린 흔적이 수없이 남아있었다.

필자는 교도훈련을 마치면서 마치 굉장한 고난을 극복한 것처럼 긍지와 기쁨속에 동기생들과 함께 산을 내렸다. 그러면서 교도훈련을 마치면 대학졸업을 한 것과 같다는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갔다.

아마 지금도 2006년 겨울교도로 입소한 북한의 대학생 교도생들은 일주일 정도 남은 퇴소를 앞에 두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 필자가 받았던 교도훈련보다 지금의 교도훈련은 얼마나 힘들지 짐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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