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학생들, 노동신문 ‘의역’해서 읽는다

▲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북한의 대학생들

4월 22일자 <노동신문>은 “남조선 청년학생들은 한나라당의 회유기만 술책을 견결히 반대 배격하여야 한다”라는 ‘조선학생위원회’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실었다. 담화 내용은 제목 그대로 한나라당을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청년학생들은 이 담화 내용을 어떻게 판단할까. 남한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아마도 반대일 것이다. 북한 학생들은 이 기사를 보면서 거꾸로 ‘남한에 민주주의가 잘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과연 ‘조선학생위원회’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유령단체는 아닌지 의문을 가진다.

먼저 <노동신문> 담화를 요약해본다.

– 한나라당이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국회총선에 대비하여 남조선의 젊은층을 끌어당기려 한다.
– 한나라당은 지금 남조선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각 계층의 민심을 낚아 반동적 집권음모를 실현해보려고 ‘변신’을 표방하는 등 별의별 권모술수를 다 하고 있다.
– 파쑈와의 대결, 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고오는 한나라당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조선이 조용할 수 없고 조선반도가 편안 할 수 없다.

과거 남한 데모 보며 ‘잘 산다’ 생각

사실 북한 주민들은 <노동신문>을 보며 내용을 ‘의역’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은 나쁜 당’이라는 기사가 실리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 국민들에게 참 좋은 당’으로 인식하는 식이다. 과거 조선중앙TV는 남한 대학생들이 늘 데모만 하는 광경을 내보냈는데, 주민들은 데모하는 모습은 안 보고 남한 학생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며 ‘남한은 잘 산다’고 생각했다.

89년 평양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씨가 남한에 돌아가서 감옥에 갔을 때 북한선전 매체는 ‘국가보안법은 나쁜 법’이라고 보도하면서 임씨 집 풍경이 조선중앙TV에 비쳐진 적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 주민들은 ‘남한은 잘 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 감옥에 갔는데 아버지가 멀쩡한 것을 도무지 이해가 하지 못했다.

<노동신문>이 오랫동안 사실보도를 하지 않고 김정일 우상화에 입각하여 주민들을 기만해 왔다는 것은 주민들도 다 알고 있다. 주민들은 4월 22일자 담화 내용도 역시 반대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번 담화로 인해 주민들이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독재국가인 북한에는 여당과 야당이 없다. 노동당의 지시, 즉 김정일 개인의 지시가 곧 당정책, 국가정책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는 여당과 야당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대립 속에서 국가정책이 채택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신문>의 이 담화가 북한의 청년학생들에게 ‘민주주의 교양’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조선학생위원회’ 유령단체로 의심해

북한의 청년학생들은 ‘조선학생위원회’가 언제 발족되었으며, 무슨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지, 위원장이 누구인지. 또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정말 있는지를 아는 학생들은 한 명도 없다.

신문을 통해 ‘조선학생위원회’라는 용어가 출현하면 사람들은 “이런 단체가 있나?” 하고 의심한다. 이 때문에 청년학생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한마디로 <노동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오면, 그것이 북한 청년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민주주의 사상’을 각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청년학생들의 판단은 빠른 편이다.

이주일 논설위원(평남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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