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일 청구권 부활시키려나

북한이 최근 남한에서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와 관련, 일제 강점 피해자들의 대일(對日) 개인 청구권 포기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발표한 ‘조.일 평양선언’에서 “두 나라 및 두 나라 인민의 모든 재산 및 청구권을 호상 포기하는 기본 원칙에 따라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키로 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구체적으로 협의키로 했다’는 단서를 달고는 있지만 북한이 대일 개인 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북한이 한일협정에서 개인 청구권을 거론하지 않은 남한을 비난하는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에 얼굴에 침뱉기’식의 모순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평양선언 발표 당시 일본은 북한으로부터 ‘납치 피해자 시인’이라는 대어를 낚았지만 배상 문제는 한일협정과 동일한 방식인 경제협력 방식으로 타결을 봤다며 외교적 승리로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북한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3일 한일협정 문서 공개와 관련한 대변인 담화에서 “문서들은 회담 당시 남조선 통치배들이 심지어 개인청구권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보상 문제마저 포기한 사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북한의 노동신문은 6일자 기명 논평에서 남한의 개인 청구권 포기를 언급하면서 한일협정 문서를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팔아먹은 반역문서”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북.일 평양선언에 비춰 이같은 주장의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북한이 개인 청구권 포기를 근거로 남한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 것과 관련,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북한이 한일협정을 사실상 굴욕협정으로 규정하고 당시 남한의 협상 주체를 비난하고 있지만 자신들만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평양선언을 발표할 당시에는 김 위원장이 납치 피해자의 존재를 직접 시인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해서라도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시급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후 일본이 유골문제를 빌미로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과거의 입장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요코타 메구미 유골 사건을 계기로 최악의 국면까지 치달은 북.일 관계가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6자회담의 타결로 북.일 수교 협상이 재개될 경우 평양선언에 명문화된 개인 청구권을 비롯한 조항의 해석을 놓고 양측이 줄다리기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북한은 강제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물론이고 한.일협정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노동신문은 6일자 기명 논평에서 “일제의 과거 죄악에 대한 청산을 외면한 일본과의 관계회복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그러한 협정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런 요구들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명문화하기도 했던 평양선언에 비해서도 한층 까다로워진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향후 북.일 수교 협상에 대비해 미리 분위기를 환기시켜두려는 포석으로 분석되기도 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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