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당국 시장통제·개입실패가 물가상승 주범

북한 시장은 1990년대 중반 국가배급 실패 이후 독자적으로 성장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로 사실상 합법성을 획득했다. 북한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데도 해주 쌀이 청진으로 유통되고, 동해안 오징어가 평양 시장에서 생산자-유통업자-시장 상인의 손을 거쳐 소비자에게 팔리고 있다. 북한 시장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 상태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에 노출돼 있다.


북한 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부 곡물과 해산물을 제외한 상품의 90%는 중국 수입품이다. 때문에 북한 산업 생산량과 함께 환율, 대외교역이 물가의 기본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도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에 정부(당국), 기업(기업소와 협동농장, 도매상), 소비자로 구성된 경제주체들의 활동이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한에서는 물가의 기준 지표로 쌀과 옥수수 등 곡물가격이 꼽힌다. 특히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쌀은 가장 필수적인 현물(소비재)로 간주된다. 쌀값의 상승은 전반적인 생계비 상승을 이끌기 때문에 농수산물과 공산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북한에서 쌀은 ‘실물화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경제주체 간 거래를 할 경우에 쌀을 기준으로 가치를 매기는 경우가 흔하다. 상품을 팔 때뿐 아니라 집 월세 산정, 개인집을 민박에 활용하는 경우에도, 쌀을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고 실제 쌀로 지불하는 것도 흔한 현상이다.


◆물가상승 주범은 북한 당국=최근 10년간 북한에서 쌀값 변동이 가장 컸던 시기는 바로 2009년 11월 화폐개혁 직후다. 화폐개혁 단행 후 50원대 미만이던 쌀값은 100배 넘게 올랐다. 이는 북한의 경제주체들 가운데 북한 당국이 물가 불안의 가장 큰 요인임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지난해 9월 북한 당국의 6·28 경제관리개선 방침이 알려지자 북한 시장 쌀값은 순식간에 1500(평양)-2200원(신의주) 가까이 올랐다. 정책 실패가 불러올 시장 왜곡을 우려한 쌀 도매상들의 공급 감소에 따른 상승이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의 정책은 시장을 왜곡시켜 물가를 상승시키는 주범이다. 당국의 잦은 시장 통제와 정책 실패는 다른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키우고 있다. 북한 당국의 경제 관련 조치 발표는 물가 폭등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강화된 통제와 검열은 물동량 감소와 소비자들의 사재기를 불러 물가를 뛰게 했다.


◆시장 쌀 공급량을 결정하는 농장원과 도매상=북한의 시장에 쌀을 공급하는 주체는, 중국으로부터 쌀을 수입하는 외화벌이 기업소, 식량 밀수업자, 그리고 협동농장에서 쌀을 사서 시장에 내다 파는 쌀 도매상, 그리고 개별적으로 식량을 시장에 내놓는 농장원들이 있다. 이들은 당국의 정책과 환율, 쌀 수급을 종합적으로 관찰하며 공급량을 결정해 이윤을 취하기 위해 활동한다.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제하면 외화벌이 기관은 중국에서 쌀 수입을 줄이고, 시장에 대한 공급량도 감소시킨다. 북한 당국이 배급을 확대하거나 중국에서 쌀 수입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쌀 공급자들은 단기간에 쌀 공급량을 크게 늘린다. 쌀은 이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맞는다. 지난달 하반기 평양과 신의주 쌀값이 2000원 가까이 떨어지는 상황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국적인 쌀 가격이 일정수준에서 조정되는 것은 농장과 외화벌이 기관에서 쌀을 받아 직접 전국을 돌며 지역 시장에 공급하는 도매상인 속칭 ‘달리기’의 영향이 크다. 북한 전역 쌀 공급 유통망 형성의 주축인 ‘달리기’들은 시장 동향에 대해 수시로 체크하고 쌀을 공급받는 농장과 기업소 간부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양강도 혜산 소식통은 5일 데일리NK에 “북한의 농장은 당국에서 농장 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해마다 수확한 쌀 일부를 확보해 놓는다”면서 “영농준비가 시작되는 2월부터 농장원들은 확보한 쌀을 달리기꾼(도매상)에게 팔아 연유(燃油)와 비닐박막 등을 구입한다”고 전했다.


이어 소식통은 “농장원들은 쌀을 파는 입장이기 때문에 시장 동향뿐 아니라 달리기꾼들의 타 지역 시장 상황을 공유한다”면서 “북한에서 쌀을 대량으로 수입해 달리기꾼들에게 쌀을 공급하는 외화벌이 기업소들도 농장원들과 마찬가지로 쌀값 동향에 관심을 둔다”고 덧붙였다. 


북한 시장에서 물품 수급 외에도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전 년도 농작물 작황 ▲계절별 농작물 작황 ▲곡물 수입량 및 대북 쌀 지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이다. 북한 화폐가치 하락과 물자부족, 당국의 정책 실패라는 고질적인 상승 요인 외에도 시기별, 계절별로 나타나는 이 같은 요인에 따라 쌀값은 등락을 거듭한다.


◆김정은 우상화 사업과 전시물자도 큰 영향=경제정책과 시장통제만큼이나 북한의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은 북한 당국의 통화 남발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 등 자본주의 사회처럼 직·간접세를 통한 조세 수입이 충분치 않는 북한 당국은 만성적인 재정난을 통화 남발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09년 화폐개혁 당시 통화 증발 효과를 당국이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각종 국책 사업과 김정은 시대 전시성(展示性) 사업으로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려왔다. 북한은 평양 10만호 살림집과 희천 발전소 건설을 비롯해 김정은의 치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유원지, 놀이공원 건설 등에 막대한 재원을 탕진해왔다.


북한 당국은 국책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을 실제 건설을 담당하는 건설사업소나 돌격대(한시적으로 차출되는 내각 일꾼, 군인 등), 기업소 등에 공급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가 붕괴되기 전에는 북한 당국이 이 기관들에 건설 자재를 공급해 공사를 추진하도록 했지만, 현재는 이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자재 등을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는 과거에는 각 기업소들이 건설 자재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업소 간 행표(수표)를 통해 건설 자재 거래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이러한 국가 생산 유통 구조가 붕괴됐다는 것이다. 


자재를 마련하기 위해 이 기관들 간 현금 거래가 이뤄지거나 시장을 통해 건설 자재를 공수한다. 특히 특수 시멘트나 철강 등 북한 내에서도 부족한 건설 자재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 이러한 건설 자재 확보 과정에서 현금이 북한 시장을 비롯해 내부에 유입되는 것이다.


이런 통화량 팽창은 물가와 환율의 연쇄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데일리NK에 “북한의 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은 화폐 공급의 증가라고 볼 수 있다”면서 “특히 과거와 달리 기업 간에 현금 거래를 하거나 시장을 통해 건설 자재 등을 구입하고 있어, 통화량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에는 수익을 내는 기업소들은 인상된 임금을 지불하고 있어 시장에 그만큼 돈이 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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