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달러위조 공방, 진실은 뭘까

달러위조 여부를 둘러싼 북미 공방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필두로 미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화폐 위조를 ‘확신’하는 발언이 연일 쏟아지고 있고 이에 질세라 북한도 자국 관영매체를 통해 ‘날조’라며 강하게 맞서고 있어 다툼이 점점 커지고 장기화할 기세다.

특히 미 행정부가 추가적인 ‘액션’에 나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14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자국 은행들에 “북한이 불법 행위를 하는데 미국의 은행들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문을 발송했다.

이를 어길 경우 9.11 테러사건 이후 제정된 애국법에 저촉돼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세계 전역의 자국 은행 본점과 지점에 북한과의 거래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무부가 지난 9월 마카오의 중국계 ‘방코 델타 아시아’(BDA)가 북한의 위조달러 지폐유통과 마약 등의 불법대금 세탁혐의가 있다며 ‘돈세탁 우선우려’대상으로 지정, 주의를 환기시키자 해당 은행에서 예금인출이 폭주해 북한계좌 동결과 거래 중단이 불가피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로 북한의 돈줄은 더 막힐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미 어느 쪽도 북핵 정국을 경색으로 몰고 가고 있는 달러위조 사건과 관련, 연루 또는 무고를 입증할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일단 그동안 양측에서 나온 주장을 종합해 보면 일단 미측의 주장에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 당국자도 “미국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것 같다”고 말했다.

BDA 사건 등과 관련, 미 측은 이미 3년 정도의 조사를 거쳤으며 당초 올 상반기에 발표하려 했으나 6개월의 추가조사를 한 뒤 지난 9월16일 발표했고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사법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미 측의 ‘사법처리’ 의지다. 위조달러와 마약거래 등 불법 혐의에 대해 거래 계좌 등의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수년전 달러화 제조에 쓰이는 특수 잉크를 북한이 수입했다는 사실도 위폐제조 혐의의 한 단초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타임스는 2일 미 사법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1989년 이후 4천500만달러 이상의 100달러 짜리 위조지폐를 제작했으며 지난 10월7일 션 갈렌드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가 체포돼 북한이 ‘슈퍼노트’로 알려진 100달러짜리 위폐 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미 측은 그러나 아직 우리측에게 구체적인 조사 결과는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숙 북미국장은 15일 “미국이 갖고 있는 사실관계에 대해 우리 측이 차분하게 들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묵묵부답’도 미 측의 주장에 힘을 싣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BDA 사건이 발생된 지도 벌써 3개월이 된 지금, 이미 마카오 당국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보고받았을 법한 중국이 함구하고 있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상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달러위조 주장에 대한 북한의 대응 ‘형식’도 석연치 않아 보인다.

북한은 달러 위조와 마약 밀매 등의 혐의를 거명하면서 이른바 파렴치 정권으로 몰아붙치는 미 행정부의 십자포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낮은 수준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2일과 10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문답에 응하는 형식으로, 13일에는 민주조선과 노동신문에 개인 필명으로, 15일에는 조선중앙통신 논평으로 맞선 게 고작이다.

외무성 성명과 그 아래 격인 외무성 대변인 성명 등과 비교해 볼 때 통신의 문답과 논평, 신문의 개인 필명은 주장의 세기가 크게 낮다고 할 수 있다.

달러 위조 주장 등을 포함한 대북 금융제재를 6자회담과 연계해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사건의 본질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를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형식과는 달리 내용에서 북한의 주장은 단호해 보인다.

북한은 15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우리 공화국은 화폐를 위조한 적도 없으며 그 어떤 불법거래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미국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이어 “미국이 약한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전쟁을 통해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려 는 것은 상투적인 수법”이라며 “불법국가로 몰아붙이기 위한 심리모략전의 도수를 높이는 것과 금융제재 책동은 그 한 고리”라고 논리를 세웠다.

논평은 특히 미측 주장의 배경과 관련, 북측은 부시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따돌림을 받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를 만회하려는 것“이라는 나름의 분석도 내놨다.

이처럼 BDA 사건으로 촉발된 대북 금융제재 공방이 확산일로로 치달으면서 차기 6자회담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연내 ‘제주도 회동’은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이며 현재로선 제5차 2단계 6자회담의 1월 개최마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숙(金塾) 외교부 북미국장은 15일 ”제주도 회동은 현재로선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북한의 달러위조 혐의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이런 입장을 잘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확립됐다고 하기에는 아직 상황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는 듯 하다.

그 때문에 특히 북미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것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외교부 당국자가 비공식 브리핑에서 ”어느 한 쪽이 주장한다고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며 북한이 전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인 만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실관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북미 양쪽을 모두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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