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다시 ‘고난의 행군’ 직면하나

북한이 어렵게 결정했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연기를 낳은 북한의 이번 수해가 100년만의 홍수로 북한 사상 최대 피해를 낳았던 1995년에 버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언론매체나 평양주재 유엔기구 관계자 등을 통해 내놓는 통계만으로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북한이 이번 수해보도에서 자주 비교인용하는 1967년 수해와 ‘고난의 행군’의 출발점이 됐던 1995년 수해를 비교해볼 때 이런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북한 사회는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면서 치수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복구를 위한 중장비의 부족과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시설(SOC)의 노후화로 복구가 늦고 이재민들에 대한 긴급구호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북한은 최근 10여년간 여름 장마철 수해를 연례 행사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이번 피해를 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농업 당국자는 이번 수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북한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최근 유엔 등의 보고를 보면 올해 북한이 입은 수해가 1995년보다 심각한 것 같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며 “이 때문에 북한이 장기 경제난으로 들어가지 않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67년 8월의 수해 때는 평양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물에 잠겼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이 올해 피해 상황을 전하면서 1967년과 자주 비교하고 있는 것도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한 것.

조선중앙통신은 “7일부터 11일 사이에만 평양시에는 40년 전인 1967년 8월25일부터 29일까지 평양 일대를 휩쓸었던 큰 물(홍수)때보다 224㎜나 더 많은 비가 내렸다”고 전했다.

당시 평양시에 거주했던 한 탈북자는 “평양시내 대부분이 1층 높이로 물에 잠겼던 기억이 있다”며 “고위층 자제들이 다닌다는 남산학교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사망하는 등 물적.인적 피해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1967년 수해를 겪고 당시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평양 시내가 물에 잠기는 일이 없도록 대동강과 보통강에 대한 수해 방지노력이 본격화됐다”며 “1980년대 초 짓기 시작했던 서해갑문도 평양시 수해방지가 주된 목적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1967년 수해는 평양시가 최대 피해지역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올해 수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겪은 물난리 중 가장 극심했던 것은 1995년 수해. 주로 평안북도와 자강도, 량강도, 함경남도, 강원도 등 북부지역에 집중됐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토의 75%가 물에 잠기고 5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1995년 수해가 막심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은 ‘자존심’을 내세우는 북한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스스로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뉴욕대표부의 박길연 대사를 통해 유엔 인도지원국(DHA)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DHA측은 평가전문가를 북한에 파견해 수해 장을 점검하고 긴급구호에 나섰다.

1995년 수해는 특히 북한의 식량난과 대기근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후유증이 더 엄청난 재해였다.

이후 매년 번갈아 이어진 가뭄과 냉해, 수해 등으로 농업을 비롯한 북한 경제 전반이 무너져 이것이 수백만명의 아사자를 낳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초래한 것이다.

올해 북한의 수해가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등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에 집중된 점도 북한이 직면할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수 있을 예상케 한다.

더구나 이번 비로 범람한 보통강은 인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무실과 인민문화궁전 등 북한의 대표적인 공공시설이 밀집해 있어 이들 시설도 피해를 입었다면 앞으로 복구작업 지휘.조직.관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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