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뉴욕필 공연에 북미관계 개선 기대

“이번 공연이 궁극적으로 북미 양국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작년 12월 뉴욕 맨해튼의 링컨센터에서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 일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뉴욕필의 공연에 거는 북한의 기대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뉴욕필이 평양 공연에서 미국과 북한의 국가를 연주키로 한 것은 양국간 “백년숙적” 관계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의 이러한 기대감은 문화와 예술 교류가 오랜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역사적 선례들에서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수교에 앞서 탁구팀 교류로 우의를 다져 ‘핑퐁외교’라는 이름까지 붙여졌고, 남북한간에는 2000년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 교예단 및 농구팀의 방남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시작이 해빙의 신호탄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 선양의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내부 소식망을 통해 뉴욕필 평양공연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선전했으며, 북한 주민들은 북미관계 개선의 기대감에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 분위기”라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공연을 생중계하는 데 동의한 것도 이번 공연을 통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북한 입장에선 핵신고 문제로 6자회담이 교착돼 북미간 대립의 재연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번 뉴욕필의 공연을 적극 활용해 대미관계를 좀더 부드럽게 끌어가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공연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면서 준비상황 하나하나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다는 전문이다.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21일 “작년 10월 현정은 회장과 만남 때도 김 위원장은 뉴욕필 공연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본인이 대단한 음악광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공연에 쏟는 정성이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라고 말했을 뿐 아니라 “노래없는 인간생활은 향기없는 꽃과 같다. 만일 인간생활에 노래가 없다면 꽃이 없는 화단과 같다”라거나 “노래와 음악을 알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으며 감상할 줄도 모르는 사람의 생활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하며 이런 사람은 감정이 없는 목석같은 인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북한 최고의 교향악단인 국립교향악단을 “나의 악단”이라고 부르면서 지난해 연초에는 이번에 뉴욕필이 공연할 동평양대극장이 리모델링을 마치자 제일 먼저 찾기도 했다.

또 러시아 음악에 관한한 매니아 수준인 김 위원장은 2000년 이후만 해도 러시아 모이세예프 국립아카데미 민속무용단,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민속합창단, 러시아 국방부 중앙군악단,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베로즈카무용단 등 러시아의 여러 예술단을 수시로 직접 초청해 10여차례나 공연을 관람하고 단장과 지휘자 등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러시아 예술단의 방북 공연과 김 위원장의 관람은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김 위원장의 2001년 러시아 방문과 2002년 극동지역 비공식 방문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이같이 음악을 좋아하는 김정일 위원장이 북미관계 개선의 한 획을 그을 뉴욕필 공연을 직접 관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남측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 때 모습을 드러내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고, 종종 중국 또는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 양국관계의 공고함을 과시하는 ‘깜짝쇼’를 펼쳐왔다.

정부 당국자는 “공연이 미국에도 중계된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직접 관람은 미국에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공연장을 직접 찾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이는 만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고위층 탈북자는 김 위원장의 동선을 철저히 감추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들어 “북한 당국이 공연을 생중계한다면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대미관계 개선에 매달리는 듯한 약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꺼려할 것으로 추측했다.

어느 경우든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북한과 자신에게 낙인된 ‘악의 축’, ‘깡패국가’ ‘잔인’ 등 부정 일변도의 이미지를 ‘음악을 사랑하고 즐길 줄도 아는 나라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바꾸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이번 뉴욕필의 공연을 통해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라거나 김 위원장의 “선군외교의 승리”라는 식으로 주민들에게 선전, 내부결속을 다지는 부수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은 과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 등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굴복 등으로 선전하면서 김 위원장의 위대성 찬양에 활용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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