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추수)가 한창인 북한 협동농장들에서 농장 간부들이 도시 주민과 학생들로 구성된 농촌지원자들을 받지 못하겠다고 완강히 버티고 있어 곳곳에서 농촌지원전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데일리NK와 통화한 함경북도 소식통은 “올해 농사를 망치면서 농장간부들이 농촌지원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지원자들이 낮에는 농장일을 돕지만 밤만 되면 모두 도둑으로 변해 식량을 빼돌리기 때문에 농장 간부들이 식량손실을 막기 위해 이들을 아예 받지 않겠다며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농장간부들은 쌀 한 톨이라도 수확고를 더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 하고 있다”며 “그런데 위에서 내려 온 지도간부(군당 부장급으로 각 농장별로 지도간부가 지정됨)들은 국가에서 정한 가을 걷이 날짜를 맞추기 위해 무조건 지원자들을 내려보내기 때문에 농장간부들과 마찰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도간부들은 가을걷이가 늦어지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가을일을 끝내고 싶어한다”면서 “그러나 농장 간부들은 가을걷이가 좀 늦어지더라도 알곡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농장원들만으로 가을을 하다보니 추수가 세월 없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해왔다.
다른 양강도 소식통은 “농장들마다 ‘기왕 농사를 다 망친 바에야 제 몫이라도 챙긴다’며 지원자들을 안 받겠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며 “위에서는 가을걷이를 끝내기 위해 ‘무조건 지원자들을 받으라’고 강요하지만 농장간부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차라리 내 몫이라도 챙기고 죽겠다’는 각오로 맞서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달 11일 데일리NK가 보도한 신의주 류초리 포전(농지)에서 농장원들이 추수하는 장면에서 예년의 추수 풍경과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0월 초가 되면 학생들과 지원자들로 가득차야 할 농지에 몇몇 농장원들만 흩어져 가을걷이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50일 전투’에 이어 ‘100일 전투’까지 벌리며 주민들을 농촌지원에 내몰고 있는 북한에서 ‘고양이 손발도 빌린다’는 바쁜 가을철에 한가한 추수장면을 보인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 협동농장 간부들이 추수가 늦어지면서까지 농촌지원단을 막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내부 사정이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0월 1일부터 농업성 실태조사단을 지방들에 내려보내 올해 수확량 감소에 대한 책임을 각 단위 농장에 묻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한다.
농업성 실태 조사단은 현지에서 농장원들의 손이 덜 미치는 구석진 포전들까지 돌며 김매기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농장별로 토질 표본까지 채취해 수급된 비료가 제대로 쓰였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작업반마다 ‘노력공수일지’들을 전면 분석하고 농장원들의 직접적인 증언들을 종합하여 농촌지원사업이 제대로 이루어 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농장에 대한 당국의 검열이 강하게 진행되다 보니 농장 간부들과 해당 농장의 지도간부들 사이에 서로가 허점들을 폭로하는 네 탓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
함경북도 소식통은 “(무산군) 농촌경영위원회에서 ‘해당 농장관리구역에 있는 개인들의 (소)토지에서 생산된 알곡을 무조건 농장 알곡 생산량에 포함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농장 간부들은 (알곡수확고를 높이자면) 가을걷이가 좀 늦어지더라도 도난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지원자들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노력을 받을 경우 그들이 먹는 식량과 훔쳐내는 식량까지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어 힘이 들어도 농장 자체로 가을걷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농장 간부들이 이처럼 농촌지원전투 자체를 막고 있지만 농장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추수철에 수확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라도 내리게 되면 많은 양곡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수가 늦어지자 북한 당국은 지난 10월 5일부터 중학생들까지 총동원, 가을걷이를 위한 긴급 ‘농촌지원’까지 조직했다.
내부 소식통은 “중학교와 대학, 공장, 기업소들에 농촌지원령이 떨어졌지만 정작 해당 농장들에서는 ‘죽어도 지원노력을 못 받겠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농장 관리일꾼들의 견지에서 보면 지원자들이 와서 파먹으나 날씨가 나빠져 손실을 보나 매 한가지이기 때문에 버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농장 관리일꾼들이 버티면서 마음이 급해진 것은 지도 간부들이다”며 “비라도 내려 논판에 쌓아둔 볏단들이 못쓰게 되면 자신들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끝으로 “일은 위(당국)에서 다 망치고 책임은 아래에 물으니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다”며 “이제라도 농사를 바로 지으려면 농사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국가가 농사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