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내부 反체제 활동 직접 증언 기대”

▲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

지난 1월 공개된 회령시 반체제 동영상의 촬영자인 박대홍(가명)씨의 입국에는 최초로 이 동영상을 입수하여 DailyNK에 전달한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의 역할이 컸다.

도 총장은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진 후 불안에 떨고 있던 박씨를 탈북자들에게 ‘안전국가’로 통하는 태국으로 옮겼으며, 그를 보호하며 미국 망명을 추진하다 한국행으로 진로를 바꿔 최근 입국에까지 성공했다.

20일 저녁 DailyNK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도총장은 “이제야 마음의 큰 시름을 하나 놓았다”고 활기찬 목소리로 박씨의 입국을 반기면서, “본인이 원한 미국 망명이 무산되었지만 한국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을 알리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박대홍씨의 망명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반체제 벽보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조작이나 기획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어 정확한 진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촬영자가 직접 증언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박씨의 망명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촬영자인 줄 알았는데 자신을 <자유청년동지회> 회령시 지부장이라고 소개하여 나도 놀랐다.

– 은신처로 태국을 택한 이유는.

동영상 공개 이후 중국으로 피신해있는 박씨에게 사람을 보내 근황을 살펴보았더니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했다. 한국으로 망명하는 것도 꺼린다고 해 미국 망명을 염두에 두고 일단 중간 기착지로 태국을 택했다.

– 박씨는 왜 한국 망명을 꺼렸나.

남한의 친북반미적인 분위기를 알고 있던 박씨는 혹시나 남한에 와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죽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까지 갖고 있었다. 고위층이나 중요한 사건과 관련된 탈북자들의 경우 대체로 이러한 불신을 강하게 갖고 있다.

– 태국에서는 박씨가 안심을 하던가?

태국에 있을 때에도 북한 보위부에서 태국 경찰을 매수해 자신을 체포, 송환할지 모른다, 암살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숙소 밖으로 한 발자국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안심시키기 위해 특급호텔에 숙소를 마련하고 NGO 활동가들이 2달간 함께 생활을 했는데 쉽게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

– 결국 미국 망명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박씨의 미국 망명 추진에는 한국, 미국, 일본 등 각국 북한인권 NGO 활동가들의 힘과 능력이 총집결 되었다. 미국 쪽에서는 현재 고인이 된 남재중 박사께서 방콕 주재 미국대사관과 백악관을 상대로 망명 의사를 전하고 절차를 논의 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남박사님이 6월 6일 타계하시면서 선(線)을 잃게 되었다. 그후 국내외 NGO들이 대책회의를 열고 한국행을 추진하는 것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 박씨 입국을 위한 NGO들의 국제공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한국을 돕는 손(Helping Hands Korea)’ 팀 피터스 대표를 비롯한 NGO 관계자들은 박씨를 방콕 주재 UNHCR로 데리고 가 난민신청을 했다. 곧바로 난민 인정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북한인권운동의 대부이신 김상헌 장로께서는 박씨의 현지 체류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밖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많은 분들이 음양으로 도왔다.

– 박씨는 자신이 외신과 인터뷰한 비용 등을 NGO에서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박씨 입국 과정에 많은 NGO들이 결합하면서 ‘박씨의 보호자’를 사칭한 사람들이 일부 금전적인 횡령을 했던 것 같다. 현재 자체 조사 중이며 도피중인 사람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많은 분들의 노고가 빛을 바래서는 안 된다. 불안감에 휩싸여있던 박씨가 피해의식에서 오해를 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 현재 박씨의 상태는?

알 수 없다. 탈북자 조사기관에서도 연락을 받은 바 없다. 일정한 절차를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 <자유청년동지회> 회령지부장으로서 북한인권실태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랍탈북연대>를 비롯한 북한인권단체들도 그를 물심양면 돕겠다.

정재성 기자 jjs@dailynk.com